보통 회사에서 S급 인재니, A급 인재니 등급 매기는 걸 좋아하는가 본데.. 내가 생각하는 (능력적인 측면만 바라봤을 때) 인재의 기준은 단순하다. 

해당 인재가 경쟁사에 스카웃되고, 그 회사에서 해당 인재에게 비슷한 인력을 붙여 줬을 경우, 
- 작년 한해 동안 진행했던 결과물을 80% 정도 재현해 내는 인재는 B급 이하
- 작년 한해 동안 진행했던 결과물의 100%를 그대로 재현해 내는 인재가 A급
- 작년 한해 동안 진행했던 결과물을 초월하여 더 많은 것을 이뤄내는 인재가 S급

아마 고과도 이런 기준으로 준다면 크게 과오는 없지 않을까 싶다. 분명한 것은 해당 과제의 모든 디자인적, 엔지니어링적인 Discussion 의 흐름을 꿰고 있고 그것을 남에게 설득할 수 있어야 100%를 재현해낼까 말까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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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인텔은 인간의 근본적인 속성에 대한 연구를 강화하기 위해 '상호작용 경험(Interaction & Experience Research)' 연구소를 설립
   - 미래에는 인간이 컴퓨터와 인터넷 등 IT와 어떤 방식으로 소통할지 그리고 이를 위해 어떤 새로운 기술이 필요한지에 대해 연구할 계획
   - 연구소장인 제네비브 벨은 문화인류학 박사로서 1998년부터 인텔의 '인간 및 관습 연구팀(People and Practices Research Team)'에서 활동.
   - 1997년 인문학자로 구상하여 출범한 '인간 및 관습 연구팀'은 인간의 본성과 생활습관, 업무방식 등을 연구하여 인텔의 기술개발 및 전략에 반영하고 있으며 현재 40여명의 인문학자가 소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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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뒤에

2011/03/16 16:11
5년 뒤에도 후회할 만한 일이라면 찬찬히 잘 생각해고보고, 그렇지 않으면 깨끗이 잊어버릴것. 반대로 5년 뒤에도 아쉬어 할 만한 일이라면 어떻게 되든 도전을 해볼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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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철 스님 주례사

2011/03/10 14:05


성철 스님께서 입적하시기 전 딱 2번 하신 주례사 중 하나입니다.

========================================================================================

오늘 두 분이 좋은 마음으로 이렇게 결혼을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좋은 서로 사랑하는 마음으로 결혼을 하는데,이 마음이 십 년, 이십년, 삼십년 가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여기 앉아 계신 분들 결혼식장에서 약속한 것 다 지키고 살고 계십니까? 이렇게 지금 이 자리에서는 검은 머리가 하얀 파뿌리가 될 때까지 아무리 어려운일이 있거나, 어떤 고난이 있더라도 서로 아끼고 사랑하며 서로 돕고 살겠는가 물으면, 예 하며 약속을 해놓 고는 3일을 못 넘기고 3개월, 3년을 못 넘기고 남편때문에 못살겠다, 아내 때문에 못 살겠다 이렇게 해서 마음으로 갈등을 일으키고 다투기 십상입니다.

그래서 그렇게 결혼하기를 원해놓고는 살면서는 아이고 괜히 결혼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안하는 게 나았을걸, 후회하는 마음을 냅니다. 그럼 안 살면 되는데 이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약속을 해놓고 안 살수도 없고 이래 어영부영 하다가 애기가 생기니까 또 애기 때문에 못하고,이렇게 하면서 나중에는 서로 원수가 되어 가지고, 아내가 남편을 아이고 웬수야 합니다. 이렇게 남편 때문에, 아내 때문에 고생 고생하다가 나이 들면서 겨우 포기하고 살만하다 싶은데, 이제 또 자식이 애를 먹입니다. 자식이 사춘기 지나면서 어긋나고 온갖 애를 먹여가지고 죽을 때까지 자식 때문에 고생하며 삽니다.

이것이 인생사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결혼할 때는 다 부러운데 한참 인생을 살다보면 여기 이 스님이 부러워, 아이고 저 스님 팔자도 좋다 이렇게 됩니다. 이것이 거꾸로 된 것 아닙니까? 스님이 되는 것이 좋으면 처음부터 되지 왜 결혼해 살면서 스님을 부러워합니까? 이렇게 인생이 괴로움 속에 돌고 도는 이유가 있습니다. 오늘 제가 그 이유를 말할 테니 두 분은 여기 앉아 있는 사람(하객들)처럼 살지 마시기 바랍니다.

서로 이렇게 좋아서 결혼하는데 이 결혼할 때 마음이 어떠냐, 선도 많이보고 사귀기도 하면서 남자는 여자를, 여자는 남자를 이것 저것 따져보는데, 그 따져보는 그 근본 심보는 덕보자고 하는것입니다. 저 사람이 돈은 얼마나 있나, 학벌은 어떻나, 지위는 어떻나, 성질은 어떻나, 건강은 어떻나, 이렇게 다 따져 가지고 이리저리 고르는 이유는 덕 좀 볼까 하는 마음입니다.

손해볼 마음이 눈꼽만큼도 없습니다. 그래서 덕볼 수 있는 것을 고르고 고릅니다. 이렇게 골랐다는 것은 덕보겠다는 마음이 있습니다. 그러니 아내는 남편에게 덕보고자 하고 남편은 아내에게 덕보겠다는 이 마음이 살다가 보면 다 툼의 원인이 됩니다. 아내는30%주고 70% 덕보자고 하고, 남편도 자기가 한 30%주고 70% 덕보려고 하니,둘이 같이 살면서 70%를 받으려고 하는 데 실제로는 30%밖에 못 받으니까 살다보면 결혼을 괜히 했나 속았나 하는 생각을 십중팔구는 하게 됩니다.

속은 것은 아닌가, 손해봤다는 생각이 드니까 괜히 했다, 이런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이 덕보려는 마음이 없으면 어떨까? 좀 적으면 어떨까요? 아이고 내가 저분을 좀 도와쥐야지, 저분 건강이 안 좋으니까 내가 평생 보살펴 줘야겠다. 저분 경제가 어려우니 내가 뒷바라지 해줘야겠다, 아이고 저분 성격이 저렇게 괄괄 하니까 내가 껴안아서 편안하게 해줘야겠다. 이렇게 베풀어줘야겠다는 마음으로 결혼을 하면 길가는 사람 아무하고 결혼해도 별 문제가 없습니다. 그런데 덕보겠다는 생각으로 고르면 백 명 중에 고르고 고르고 해도 막상 고르고 보면 제일 엉뚱한 걸 고른 것이 됩니다. 그래서 옛날 조선시대에는 얼굴도 안보고 결혼해도 잘 살았습니다. 시집가면 죽었다 생각하거든. 죽었다 생각하고 시집을 가보니 그래도 살만하니까 웃고 사는데, 요새는 시집가고 장가가면 좋은 일이 생길까 기대하고 가보지만 가봐도 별 볼 일이 없으니까, 괜히 결혼했나 후회가 됩니다.

결혼식하고 며칠 안 돼서부터 후회하기 시작합니다. 어떤 사람은 결혼하기 전부터 후회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왜냐, 신랑신부 혼수 구하러 다니다가 의견차이가 생겨서 벌써 다투게 됩니다. 안 했으면 하지만 날짜 잡아놔서 그냥 하는 사람들도 제가 많이 봅니다.. 오늘 이 자리의 두 사람이 여기 청년정토회에서 만나서 부처님법문 듣고 했으니까 제일 중요한 것은 오늘 이 순간 부터는 덕보겠다는 생각을 버려야 됩니다.

내가 아내에게, 내가 남편에게 무얼 해줄 수 있을까, 내가 그래도 저분하고 살면서 저분이 나하고 살면서 그래도 좀 덕봤다는 생각이 들도록 해줘야 않느냐 이렇게만 생각을 하면 사는데아무 지장이 없습니다. 그런데 심보를 잘못 가져놓고 자꾸 사주팔자를 보려고 합니다. 궁합본다고 바뀌는 게 아닙니다. 바깥 궁합 속 궁합 다보고 삼 년을 동거하고 살아봐도 이 심보가 안 바뀌면 사흘 살고 못삽니다. 그러니 이 하객들은 다 실패한 사람들이니까 괜히 둘이 잘살면 심보를 부립니다. 남편에게 '왜 괜히바보같이 마누라에게 쥐어 사나, 이렇게 할 것 뭐 있나'하고, 아내에게는 '니가 왜 그렇게 남편에게 죽어사나, 니가 얼굴이 못났나 왜 그렇게 죽 어 사노' 이렇게 옆에서 살살 부추기며, 결혼할 땐 박수치지만 내일부터는 싸움을 붙입니다.

이런 말은 절대 들으면 안됩니다. 이것은 실패한 사람들이 괜히 심술을 놓는 것입니다. 남이 뭐라고 해도 나는 남편에게 덕되는 일 좀 해야 되겠다. 남이 뭐라 그러든, 어머니가 뭐라 그러든 아버지가 뭐라 그러든, 누가 뭐라 그러든 나는 아내에게 도움이 되는 남편이 되어야겠다 이렇게 지금 이순간 마음을 딱 굳혀야 합니다.

괜히 애까지 낳아놓고 나중에 이혼한다고 소란피우지 말고 지금 생각을 딱 굳혀야지, 그렇게 하시겠어요? 덕 봐야돼요? 손해 봐야돼요? 손해보는 것이 이익이다' 이것을 확실하게 가져야합니다. 오늘 두분 결혼식에 참여한 사람들은 반성 좀 해야합니다. 이렇게 두 분의 마음이 딱 합해지면, 어떻게 되느냐, 아내의 오장육부가 편안해 집니다. 이오장육부가 편해지면 어떻게 되느냐, 임신해서 애기를 갖게 될때 영가들도 죽을때 초조 불안해 죽은 귀신도 있고, 편안하게 도 닦다 죽은 사람도있습니다. 편안 한 데는편안한게 인연을 맺어오고, 초조불안하면 초조불안한 게 딱 들어옵니다. 그래서 이것을 잉태라고 합니다.

태교가 아니고, 잉태할 때 여자가 마음이 편안한 상태에서 잉태를 하면 선신을 잉태를 하고, 심보가 안 좋을 때 잉태를 하면 악신을 잉태합니다. 처음에 씨를 잘 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대부분 결혼해 가지고 덕보려고 했는데 손 해를 보니까, 심사가 뒤틀려 있는 상태에서 같이 자다보니 애가 생깁니다. 기도하고 정성 다해서 애가 생기는 것 이 아니고 그냥 둘이 좋아 가지고 더부덕덥덥하다보니까 애기가 생겨버립니다.

그러니 이게 처음부터 태교가 잘못됩니다. 이렇게 잉태해 가지고는 성인낳기는 틀린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이 밥 먹고 짜증내고 신경질 내면 나중에 위를 해부해보면 소화 가 안되고 그냥 있습니다. 이 자궁이라는 것은 어머니의 오장육부하고 연결이 되어있습니다. 이것이 신경을 곤두세우고 짜증을 내면 오장육부가 긴장이 되어 있습니다. 안에 있는 애기가 늘 긴장 속 에서 살아가야 합니다. 그래서 이것이 선천적으로 신장질환이 생기든지 이이가 불안한 마음을 갖습니다.

엄마가 편안한 마음을 갖고 있고 원기가 늘 따뜻하게 돌고, 애기가 그안에 있으면 그렇게 편안할 수가 없어요. 그러니까 이 아이는 나중에 태어나도 선척적으로 도인처럼 편안한 사람이 됩니다. 그러니까 남편이 어떻든, 세상이 어떻든 애를가진 이는 편안 해야합니다. 편안하려면 수행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아내가 편안한 것은 누구의 영향을 받느냐 바로 남편의 영향을 받습니다. 남편이 애는 좋은 애를 낳고 싶으면서 아내를 걱정시키면 좋은 아이를 낳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아내가 애를 가졌다고 하면 집에 일찍 들어 오고 나쁜 것은 안 보여주고 늘 아껴주고 사랑해줘서 거들어 줘야 합니다. 시어머니들도 손자는 좋은것을 보고 싶은데 며느리를 볶으면 손자가 나쁜 애가 나옵니다. 그러니까 며느리가 편안하도록 해줘야합니다.

제일 중요한 것은 누가 뭐라고 해도 본인이 편안한 것이 제일 좋고, 주위에서도 이렇게 해줘야 합니다. 이렇게 정신이 중요하고, 두 번째는 음식을 가려먹어야 합니다. 육식을 조금하고 채식을 많이 하고, 술 담배를 멀리하고 이렇게 해야 애기가 좋습니다 그리고 세 번째, 애기를 낳은 후에 아무것도 모른다고 둘이서 서로 싸운다면 안됩니다. 한국에서 태어나면 한국말 배우고 미국에서 태어나면 미국말 배우고 일본에서는 일본말 배우고 원숭이 무리에서 자라면 원숭이 되는 것 이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어릴때 부모가 하는 것을 그대로 본받아서 아이의 심성이 됩니다. 그래서 옛날부터 세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런데 애기가 조그만하다고 애기를 옆에 두고 둘이서 짜증내고 다투면 사진 찍듯이 그대로 아기 심성이 결정이 납니다. 그래서 아버지가 술주정하고 그러면 아이가 나는 크면 절대로 그렇게 안 할거야 하지만 크면 술주정합니다. 다투는 집에서 태어나면 자기는 크면 절대로 다투지 않겠다고 하지만 크면 다투게 되어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대로 모방해서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애기를 낳으려면 직장을 다니지 말아요. 아니면 3년은 직장을 그만두어요. 아니면 애기를 업고 직장에 나가든지. 이렇게 해서 아이를 우선적으로 해야합니다. 아이를 우선적으로 하려면 아이를 낳고 안그러려면 안 낳아야 합니다. 안 그러면 아이가 복덩어리가 되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인생을 망치는 고생덩어리가 됩니다.

애 때문에 평생고생하고 살게됩니다. 3년까지만 하면 과외 안 시켜도 괜찮고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제 말 잘 들으십시오. 이렇게 안 하려면 낳지를 말고 낳으려면 반드시 이렇게 하십시오. 그래야 나도 좋고 자식도 좋고 세상도 좋습니다. 잘못 애 낳아서 키워놓으면 세상이 시끄럽습니다. 반드시 이것 을 첫째 명심하십시오. 가정에서 이것이 첫째입니다.

두 번째, 제가 신도 분들 많이 만나보면, 애 때문에 시골 살면서 남편 떼어놓고 애 데리고 서울로 이사가는 사람, 애 데리고 미국에 가는 사람이 있는데 이것은 절대 안됩니다. 두 부부는 애기 세 살 때까지만 애를 우선적으로 하고 그 이후에는 어떤 일이 있더라도 남편은 아내, 아내는 남편을 우선으로 해야합니다. 애기는 늘 이차적으로 생각하십시오. 대학에 떨어지든지 뭘 하든지 신경쓰지 마십시오.

누가 제일 중요하냐, 아내요 남편이 첫째입니다. 남편이 다른 곳으로 전근가면 무조건 따라가십시요. 돈도 필요없습니다. 학교 몇 번 옮겨도 됩니다. 이렇게 남편은 아내를, 아내는 남편을 중심으로 놓고 세상을 살면 아이들은 전학을 열 번가도 아무 문제없이 잘삽니다. 그런데 애를 중심으로 놓고 오냐오냐하면서 자꾸 부부가 헤어지고 갈라지면 애는 아무리 잘해줘도 망칩니다.

여기도 그렇게 사는 사람 있을 것입니다. 오늘부터 정신차리십시오. 제얘기를 선물로 받아 가십시오. 이렇게 해야 가정이 중심이 서고 가정이화목해집니다. 이렇게 먼저 내가 좋고 가정이 화목한 것을 하면서 내가 사는 세상에도 기여를 해야합니다. 우리만 잘산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늘 내 자식만 귀엽게생각말고 이웃집아이도 귀엽게 생각하고 내 부모만 좋게 생각하지 말고 이웃집 노인도좋게 생각하고 이런 마음을 내면 어떠냐, 내가 성인이 되고 자식이좋은 것을 본 받습니다. 그리고 부모에게 불효하고 자식에게 정성을 쏟으면 반드시 자식이 어긋나고 불효합니다. 그런데 늘 자식보다는 부모를, 첫째가 남편이고 아내고 두 번째는 부모가 돼야자식이 교육이 똑바로 됩니다.

애를 매를 들고 가르칠 필요 없이 내가 늘 부모를 먼저 생각하면 자식이 저절로 됩니다. 그러니까 애를 키우다 나중에 저게 누굴 닮아 그러나 하면 안됩니다. 누굴 닮겠습니까. 둘을 닮습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립니다. 나쁜 인연을 지어서 나쁜 과보를 받아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반드시 인연을 잘 지어서 처음에 조금만 노력하면 나중에 평생 편안하게 살수 있습니다.

두 부부는 서로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려고 해야합니다. 자식을낳으려면 잉태 할 때와 뱃속에 있을 때, 세 살 때까지가 중요하니 마음이 편안해야 하고 부부가 화합해야합니다. 주로 결혼해서 틈이 생길 때 애가 생기고 저 남자와 못살겠다 할 때, 애기를 키우기 때문에 아이들이 사춘기가 되면 부모에게 저항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애가 중학교까지 잘 다니다가 고등학교 가더니 그렇다, 친구 잘못 사귀어서 그렇다고 하지만 그렇지가 않습니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심은 데 팥 납니다. 그러니 이미 애기가 그렇게 되었거든 지금 엎드려서 참회를 하여야 고쳐집니다. 지금 이 부부는 안 낳았으니까 반드시 그렇게 낳아야 합니다.

세 번째 남편을 아내를 서로 우선시 하고 자식을 우선시 하지 않습니다. 첫째가 남편이나 아내를 우선시하고 둘째가 부모를 우선시하지 남편이나 아내보다도 부모를 우선시하면 안됩니다. 그것은 옛날 이야기입니다. 일단 아내와 남편을 우선시 할 것, 두 번 째 부모를 우선시 할 것, 세 번 째 자식을 우선시 할 것, 이렇게 우선순위를 두어야 집안이 편안해집니다. 그러고나서 사회의 여러 가지도 함께 기여를 하셔야합 니다.

이러면 돈이 없어도 재미가 있고, 비가 세는 집에 살아도 재미가 있고, 나물 먹고 물 마셔도 인생이 즐거워집니다. 즐겁자고 사는 거지 괴롭자고 사는 것이 아니니까, 두 부부는 이것을 중심에 놓고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남편이 밖에 가서 사업을 해도 사업이 잘되고, 뭐든지 잘됩니다. 그런데 돈에 눈이 어두워 가지고 권력에 눈이 어두워 가지고, 자기 개인의 이익에 눈이 어두워 가지고 자기 생각 고집해서 살면 결혼 안 하느니보다 못합니다. 그러니 지금 좋은 이 마음이 죽을 때까지 내생에까지 가려면 반드시 이것을 지켜야 합니다. 이렇게 살면 따로 머리 깎고 스님이 되어 살지 않아도 해탈하고 열반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대승보살의 길입니다. 제가 부주 대신 이렇게 말로 부주를하니까 두 분이 꼭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Posted by hugman
그 개는 무엇을 보았나 What the dog saw - 말콤 글래드웰
2011-03


광고, 개 훈련, 인재 경영 등등의 사회 여러분야에 대한 말콤 글레드웰의 독창적인 분석 및 시각이 돋보이는 책이다. 저널리스트답게 저자는 특정 에피소드에 대해서 여러가지 문헌 및 인터뷰를 통해서 저자의 주장 및 시각을 뒷받침 한다. 몇몇 시각은 기존의 통념을 흔들어 놓고 새로운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하기에 충분하다.

총 3부로 구성되어 있음
1부 : 외골수, 선구자 그리고 다른 마이너 천재들
2부 : 이론과 예측, 그리고 진단
3부 : 인격, 성격, 그리고 지성

1부 : 외골수, 선구자 그리고 다른 마이너 천재들
1장 - 진정한 색깔
: 어떻게 금발염색제가 미국시장에 등장하고 휩쓸게 되었는지에 대한 에피소드, '난 소중하니까요' 라는 광고카피가 여성의 사회진출이 늘어나는 시대상과 어떻게 연결되는지에 대한 고찰. P39: 여성들은 자신을 발견했고, 염색제는 그들에게 달라질 수 있는 수단의 하나를 안겨 주었다. 그들은 머리색과 동시에 삶을 바꾸었다. "나는 소중하니까요."

2장 - 개를 사로잡는 달인의 몸짓
: 언어로 표현되지 않는, 그러나 누구나 심지어 개조차도 파악하는 몸의 언어.

3장 - 케첩 수수께끼
: 머스타드와 케첩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 장에서 중요하게 다뤄지고 있는 것은 최초의 단일한 맛의 머스타드가 현재의 다양한 맛의 머스타드로 진화화는 과정에서 발견된 '사용자에 대한 잘못된 믿음' 이다. 머스타드를 통해 깨닫게 된것은 사용자는 '그 새로운 맛'을 보여주기전에는 자신이 원했던 맛이 무엇인지를 모른다는 점이다. 반명 케첩의 경우는 '하인즈' 하나의 브랜드로 굳어지게되고 그 맛도 다양하지 않다. 하지만 그 하나의 케첩에는 인간이 맛볼 수 있는 여러가지 맛들이 한번에 다 들어가 있다.

4장 - 투자 세계의 이단아
: 블랙스완의 저자 나심 탈레브에 대한 이야기이다. 기존의 정규분포에 의존한 경제시스템이 얼마나 무모하고 운에 의존하였던 것인가를 지적하고, 언제든 예측불가능한 상황이 발생함을 염두에 두고 그것을 오히려 이용하는 나심 탈레브의 투자 전략에 대해서 설명한다. 블랙스완의 내용과 겹침

5장 - 주방의 제왕
: 미국의 주방을 장악했다는 가문에 대한 이야기임, 해당 문화에 대한 이해가 적어 크게 다가오지 않음

6장 - 존 록의 잘못
: 최초의 피임약 개발자 '존 록'의 잘못에 대한 이야기이다. 최초의 존 록은 '피임약' 사용의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28일 주기 복용법을 제시하였는데 실제로 이는 아무런 과학적 타당성도 필요성도 없는 것이다. 단지 피임약을 통해 이루어지는 피임 과정이 '자연적'이라는 인상을 주기 위해서 였다. 그때 당시에 오히려 여성의 '건강'을 위하여 피임약을 복용해야 한다고 주장했어야 한다는것이 논지.

2부 : 이론과 예측, 그리고 진단
1장 - 공공연한 비밀
: 한때 주가총액 1위를 달리던 '엔론' 이라는 회사가 어떻게 무너지게 되었는지에 대한 분석. 중요한 것은 기밀이나 정보의 비공개가 아니고 넘쳐날정도로 많이 공개되어 있는 정보들 속에서 주주나 주식투자자들이 중요 정보를 해석, 분석해 내는 것이라는 것이 주 요지. 즉 현재 시대는 숨겨져 있는 중요 몇몇 정보를 캐내는 것이 중요한 시대가 아니라(워터게이트처럼) 감당할 수 없는 정보를 분석해주는 분석기법이 더 중요한 시대가 되었다.

2장 - 밀리언 달러 머레이
: 노숙자 머레이에게 1년에 국가가 투자해야 하는 비용이 밀리언 달러가 넘는다. 해당 노숙자에게 소요되는 복지비를 정규분포로 가정하는 방식의 복지정책은 실제로 쓸모가 없다는 분석을 제시한다. 즉 몇몇 육체적, 정신적으로 불안정한 노숙자가 대부분의 복지비를 사용하며 따라서 복지 정책도 이러한 몇몇 노숙자를 집중관리하는 방식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점을 제시. 실제의 대부분의 사회 현상이 정규분포가 아니고 멱함수분포(Power Law Distribution : 한 극단에 분포가 몰린 모양)를 가진다는 점을 지적

3장 - 이미지 판독의 허점
: 우리가 분석력이 높다고 믿는 몇몇 이미지 기반의 예측방법의 허점을 지적한다. '빨대를 가지고 세상을 보면 어떻게 될까?'

4장 - 빌려온 창조
: 지적재산권에 대한, 표절과 암묵적 사용등등에 대한 글이다.

5장 - 조각 맞추기
: 사후판단 편향(Creeping Determinisim) 에 대해 지적하는 글이다. 사람들은 대부분 결과가 주어지면 즉 사후에 그 결과를 설명하는 단서들 - 기존에 분명 제시되었지만 눈여겨 보지 않았던 - 을 부각해서 떠들고는 한다.

6장 - 실패의 두 얼굴
: 저자가 생각하는 '위축'과 '당황'을 설명한다. 위축이란 압박을 받는 상황에서 명시적 학습에서 배웠던 규칙들에 얽매여 자연스러움을 잃어버리는 현상이다. 즉 생각이 너무 많아 생기는 현상.  당황이란 심리학에서 말하는 인식 제한(Perception Narrowing) 을 초래한다. 즉 '머리가 텅 빈' 상황이 되어 무엇을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는 본능에 기대는 상황이다.


3부 : 인격, 성격, 그리고 지성
1장 - 대기만성형 예술가들
: 어떤 이들은 특정 영감을 얻고 구현하는 것을 매우 짧고 어린시기에 하는 사람도 있는 반면에, 어떤 이들은 비슷한 수준의 단계에 다다르기 위해서 끊임없이 갈고 가다듬는 과정을 거친다. 피카소와 세잔.

2장 - 성공의 이면
: 과연 어떤 이를 뽑아야 좋은 선택을 한 것일까? 어떤식으로 그러한 사람들을 선별 해야 할까? 프로 축구선수를 뽑는 방법, 좋은 선생님을 뽑는 방법, 좋은 금융전문가를 뽑는 방법?

3장 - 허상에 불과한 심리수사
: 프로파일링이라 불리는 수사기법에 허상에 대해 지적

4장 - 인재 경영의 허울
: 인재 위주의 경영에 대한 허울을 엔론사의 사태에 기대어 설명한다. 오히려 성공적인 조직이란 조직으로서 스타인 기업들이지 개개인이 스타인 조직이 아니다.

5장 - 첫인상의 마력
: 첫인상은 단지 2초만에도 결정이 된다. 그 외의 시간을 주어도 앞의 2초동안 내린 결론과 다를 바가 없다.

6장 - 핏불을 위한 변호
: 폭력적이라고 사육이 금지된 '핏불'이 정말 그렇게 폭력적인가? 대부분은 환경때문이다.








Posted by hugman
책 vs 역사 - 볼프강 헤를레스, 클라우스-뤼디거 지음, 배진아 옮기, 2010, 추수밭

문명이 시작된 이래로 인류역사에 영향을 크게 미친 50권의 책을 시대별로 선정하여 각 책의 저자, 배경 및 그 영향에 대해서 설명한다. 전체적으로 굵직굵직한 책들이 정리가 되어 있지만, 독일 저자가 정리하였기 때문인지 다분히 서양권 출판물들에 치중되어 있고, 특히 독일권 출판물에 후한 점수를 많이 주고 있다. 미처 놓쳤던 굵직한 책을 새로 알게 되거나, 그 앞뒤 전후관계 파악정도로만 참고할 만하다.

==================  고대 ==================
BC 2350년경, <사자의 서> -사후 세계 여행의 안내서, 이집트 고대 문명
BC   8세기경, <일리아스> -영웅 신화의 원조, 호메로스
BC 6/5세기경, <논어>- 하늘과 땅의 군형, 공자
BC 325년경, <기하학 원론> - 세계의 기원이 된 책, 유클리드
BC 3/2세기경, <구약성서> - 책 중의 책, 유대민족
AD 2세기경, <신약성서> - 희망의 서, (저자미상)
AD 413~426, <신국론> - 역사와 행복의 결합, 아우렐리우스 아우구스티누스

==================  중세 ==================
AD 650~656, <코란> - 신의 마지막 계시, (저자미상)
AD 11/12세기, <벽암록> - 영원을 향한 명상, (저자미상)
AD 1200년경, <니벨룽겐의 노래> - 좌절과 몰락의 서사시, (저자미상)
AD 1294~1328, <독일어 설교> - 진리를 찾는 다른 방법, 마이스터 에크하르트

==================  근대 ==================
AD 1516, <유토피아> - 중용의 파라다이스, 토머스 모어
AD 1522/1534, <독일어 성서> - 민중서가 된 성서, 마르틴 루터
AD 1543, <천체의 회전에 관하여> - 한 시대가 무너지다,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
AD 1568, <매우 놀라운 작품> - 자연 치유법의 고안, 파라셀수스
AD 1595, <아틀라스 혹은 세계구조에 관한 지리학적 고찰> - 정확한 지도, 정확한 세계상, 헤르하르뒤스 메르카토르
AD 1595/1597, <로미오와 줄리엣> - 사람들을 사로잡은 로맨스, 윌리엄 세익스피어
AD 1628, <동물의 심장과 혈액의 운동에 관한 해부학적 논고> - 의학의 센세이션, 윌리엄 하비
AD 1637, <방법서설> - 인간 중심주의로의 전환, 르네 데카르트
AD 1632, <두 우주 체계에 대한 대화> - 자연과학의 발견, 갈릴레오 갈릴레이
AD 1651, <리바이어던> - 현대 정치철학의 토대, 토머스 홉스
AD 1684, <극대 극소를 위한 새로운 방법> - 인간사고의 ABC, 고트프리트 빌헬름 라이프니츠
AD 1687,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 > - 완전히 새로운 물리학, 아이작 뉴턴
AD 1719, <로빈슨 크루소> - 난파된 인생의 고독, 대니얼 디포
AD 1726, <걸리버 여행기> - 풍자적 유토피아 소설, 조너선 스위프트
AD 1762, <사회계약론> - 일반의지는 가능한가, 장 자크 루소
AD 1776, <국부론> - 만인을 위한 부?, 애덤 스미스
AD 1781, <군도> - 폭군에 맞서, 프리드리히 실러
AD 1781, <순수이성비판> - 자유와 도덕법칙, 이마누엘 칸트
AD 1806/1830, <파우스트> - 세계를 담은 작품, 요한 볼프강 폰 괴테


==================  현대 ==================
AD 1804, <민법전> - 자유의 법,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AD 1807, <정신현상학> - 사라진 인간, 게오르크 빌헬름 프리드리히 헤겔
AD 1818, <프랑켄슈타인> - 과학에 대한 경고, 메리 셸리
AD 1848, <공산당 선언> - 파라다이스를 위한 투쟁 안내서, 카를 마르크스 와 프리드리히 엥겔스
AD 1859, <종의 기원> - 인간을 만든 자연, 찰스 다윈
AD 1865, <막스와 모리츠> - 소시민을 조롱한 악동들, 빌헬름 부슈
AD 1883~1885,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 정신적 노예화 거부, 프리드리히 니체
AD 1900, <꿈의 해석> - 억압된 내면을 들여다보라, 지그문트 프로이트
AD 1900년경, <시온 의정서> - 만들어진 적, (저자미상)
AD 1905/1916, <특수상대성 이론과 일반상대성 이론에 관하여> - 혁명을 가져온 빛,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AD 1902~1908, <알파 입자와 가벼운 원자의 충돌> - 핵물리학의 출발점, 어니스트 러더퍼드
AD 1927, <황야의 이리> - 방황하는 청춘을 위하여, 헤르만 헤세
AD 1945, <말괄량이 삐삐> - 여성과 아동에게도 권리를,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AD 1947, <계몽의 변증법> - 계몽의 추락에 대한 고민, 테오도어 아도르노와 막스 호르크하이머
AD 1948/1953, <킨제이 보고서> - 성의 금기를 깨다, 알프레드 킨제이
AD 1953, <DNA의 구조> - 생명의 암호, 제임스 왓슨과 프랜시스 크릭
AD 1954/1955, <반지의 제왕> - 교양있는 판타지, J.R.R. 톨킨
AD 1966, <마오쩌둥 오럭> - 강력한 설득무기, 마오쩌둥
AD 1996, <문명의 충돌> - 문화는 공존한다, 새뮤얼 헌팅턴
AD 1997, <해리 포터> - 자아실현에 대한 동경, J.K. 롤링





Posted by hugman
원출처 : http://interpiler.com/index.php/2011/01/%ED%8E%98%EC%9D%B4%EC%8A%A4%EB%B6%81%EA%B3%BC-%EC%8B%B8%EC%9D%B4%EC%9B%94%EB%93%9C%EA%B0%80-%EB%8B%AC%EB%9D%BC%EC%A7%84-%EA%B7%B8-%EB%95%8C/

시작은 모두 대학생들의 단순한 아이디어였습니다. 하버드 대학생들이 똑똑하기야 하지만, 싸이월드를 만들었던 KAIST 학생들이 딱히 이들보다 덜 똑똑하다고 주장할 근거도 없죠. 우연히 어느 날 갑자기 주목을 받았고, 한 번 사용에 탄력이 붙으면서 사용자가 급격하게 늘어난데다, 거기서 멈추지 않고 계속 새로운 기능을 추가하면서 호평을 받았다는 것도 페이스북이나 싸이월드 모두 다를 바 없는 역사였습니다. 시기는 약간 달랐습니다. 싸이월드는 1999년에 만들어졌고, 페이스북은 2004년에 만들어졌으며, 싸이월드가 이름을 얻기 시작한 건 경쟁서비스였던 프리챌이 유료화 정책을 밝혔던 2002년이었고 페이스북이 이름을 얻게 된 건 2004년 말이었죠. 시기적으로보면 싸이월드가 훨씬 앞서 있는 셈입니다. 그런데 모두가 알다시피 오늘날의 싸이월드와 페이스북은 비교 자체가 어렵습니다. 페이스북 서비스가 기업의 전체인 페이스북의 기업가치 평가액은 500억 달러, 싸이월드를 한 ‘부문’으로 갖고 있는 SK커뮤니케이션즈의 시가총액은 약 7600억 원. 달러로 환산하면 7억 달러 좀 못되겠군요.

이런 차이에 대한 분석은 많습니다. 실명제 때문에 싸이월드의 해외진출이 막혔다느니, 한국 사용자만을 위한 우물안 개구리 식 서비스 탓이라느니, 심지어 ‘페이스북은 개방인데 싸이월드는 폐쇄’라는 식의 선언에 가까운 분석까지도 나옵니다. 하지만 그것 때문이었을까요? 전 오히려 페이스북과 싸이월드가 각각 성장과정에서 만난 그들의 파트너에 더 관심이 갑니다.

페이스북의 성공에 이르는 길은 장미꽃잎 뿌려놓은 아름다운 길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때로는 오물을 피해야 하고, 때로는 돌부리에 걸려가며 덜컹거리면서도 전진해야 하는 거친 황무지에 가까웠죠. 마크 저커버그에게는 페이스북의 아이디어가 자신들의 것이었다는 윈클보스 형제의 소송이 있었고, 친구 에듀아르도 세버린과의 분쟁이 있었으며, 초기 조언자이자 페이스북을 한 단계 위로 끌어올렸던 핵심 인물이었던 숀 파커가 마약 사건 때문에 경찰에 긴급체포되는 우여곡절까지 겪어야 했죠. 회사가 인정받을만큼 충분히 성장한 뒤에도 페이스북은 도무지 프라이버시라는 걸 모른다는 각계의 비판에 시달려야 했고, 저커버그가 그다지 인정하고 싶어하지 않는 아픈 과거들만 꼬집어내 모아 쓴 ‘Accidental Billionaire’라는 책이 영화화돼 박스오피스 1위에 오릅니다. 저커버그는 페이스북을 통해 돈은 엄청나게 벌었지만 결코 순탄하게 벌지는 않았던 셈입니다.

싸이월드도 그다지 아름답다고 볼 수는 없었습니다. KAIST 동아리에서 함께 싸이월드를 만들었던 친구들은 결국 끝까지 가지 못하고 도중에 흩어져 제 갈길을 갑니다. 게다가 한국에서 SNS라는 말을 쓰는 사람도 별로 없던 시절에 처음 서비스를 만들어낸 이 회사 앞에는 비슷한 형태의 ‘커뮤니티 사이트’였던 프리챌이란 강력한 경쟁자도 있었습니다. 프리챌 사람들의 생각은 다르겠지만 싸이월드 사람들이 보기에는 이 거대한 선발주자는 싸이월드의 몇몇 기능을 그대로 표절하는 일을 반복하기도 했습니다. 결과적으로 프리챌이 유료화를 시작하면서 싸이월드가 반사이익을 보긴 했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습니다. 본격적으로 싸이월드가 성장할 때가 되자 새 투자자가 필요했고, 결국 싸이월드는 SK커뮤니케이션즈에 매각됩니다. SK커뮤니케이션즈가 어떤 회사였던가요. ‘네츠고’라는 지금은 기억도 나지 않는 인터넷 연결 사업과(유선통신서비스) 라이코스의 한국 서비스였던 라이코스 코리아(인터넷포털), 그리고 OK캐시백(멤버십마케팅)까지 도무지 서로 어울려보이지 않는 사업들을 짬뽕으로 섞어놓았던 회사였습니다.

두 회사의 운명이 달라진 건 그 이후입니다. 페이스북은 페이팔의 창업자이자, 페이팔을 매각한 돈으로 성공적인 벤처캐피탈을 만들어낸 피터 티엘을 만납니다. 숀 파커의 소개였죠. 티엘은 페이스북을 뒤바꿔 놓습니다. 창업자인 저커버그에게는 계속해서 페이스북을 다듬고, 하던 일을 할 것이며, 당장 큰 돈을 가져갈 생각 따위는 꿈도 꾸지 말라고 얘기합니다. 티엘은 창업자가 그때까지 잘 하던 일에 계속 집중하도록 도왔죠. 그리고 다른 운영과 관련된 일은 실리콘밸리와 비즈니스에 익숙한 자기가 직접 맡습니다. 그렇게 티엘은 필요한 사람들을 데려오기 시작합니다. 이 과정에서 대학 기숙사에서 함께 꿈을 나눴던 친구 가운데 사업을 맡았던 에듀아르도 세버린이 쫓겨납니다. 페이스북의 코드를 쓰기 위해서는 마크 저커버그와 그 못잖은 프로그래머였던 더스틴 모스코비츠는 꼭 필요한 존재였지만, 세버린은 아니었습니다. 그는 배짱이 필요한 큰 협상의 경험도, 수백명이 넘어가는 조직을 이끌어본 경험도 없는 대학을 막 졸업한 철부지 사업가였고 티엘은 산전수전 다 겪은 실리콘밸리의 공격적인 벤처캐피탈리스트였으니까요. 저커버그는 여전히 하버드 기숙사처럼 생긴, 하지만 부동산 가격과 건물 설비만은 최고 수준인 새 사무실에서 슬리퍼를 신고 코드를 짭니다. 티엘의 원칙은 하나였죠. “CEO가 봉급을 적게 가져가는 회사가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그는 창업자가 한 눈을 팔지 않게 하는 조력자이자, 필요한 인력을 소개해주는 조언자, 그리고 필요할 때면 기꺼이 비난을 뒤집어쓰며 구조조정의 악역을 맡는 큰 형 역할을 맡습니다. 결국 티엘의 투자는 더 큰 투자자를 불러들여 페이스북을 새로운 단계로 성장시키고, 이제 골드만 삭스까지 달려들어 페이스북에 500억 달러의 가치를 부여합니다.

싸이월드는 어땠을까요. SK커뮤니케이션즈는 싸이월드 인수와 함께 ‘대박’을 터뜨립니다. 싸이월드는 크게 성공했고, 거의 모든 한국인이 쓰는 서비스가 됐습니다. 그런데 거기서 이상한 일이 벌어집니다. 창업자를 비롯한 초기 멤버는 하나둘 회사를 떠나기 시작합니다. 그 자리는 SK텔레콤에서 온 사람들로 대체되거나 외부 기업에서 스카웃한 사람들로 바뀌어갑니다. 회사의 핵심역량은 커뮤니티라고 표현하든, 네트워크라고 표현하든 간에 관계없이 ‘Social’이었음에 분명했는데도 어느 날 갑자기 싸이월드를 운영하던 SK텔레콤 출신의 자칭 ‘전문가’들은(싸이월드 개발 당시 코드 한 줄 쓰지 않았던) 소셜은 던져버리고 “인터넷 비즈니스의 본령은 검색”이라며 난데없이 검색회사를 인수합니다. 배가 산으로 가긴 했지만, 그래도 이런 산으로 가는 투자를 한 사람이 책임지고 회사의 전략을 실행해나가도 될까말까한 위기 상황 앞에서 그나마 남아 있던 사령탑도 교체됩니다. 그것도 한번이 아니라 여러번.

벤처투자의 기본은 뭘까요? 사람들마다 다르게 얘기하지만 그래도 공통적으로 이런 얘기를 합니다. 1. 종잣돈 투자 2. 올바른 고용에 대한 조언 3. 벤처캐피탈의 네트워크를 통한 고객 소개 4. 벤처캐피탈 자체의 명성을 통한 신용 제공. 피터 티엘은 돈이 없어 성장의 문턱에 멈춰 있던 페이스북에게 50만 달러의 종잣돈을 댔고, 직접 믿을만한 사람들을 소개해 회사의 경영을 안정적으로 변화시켰으며, 페이스북에 투자할 제2의 투자자를 찾아줬고, 무엇보다 자신이 투자한다는 점을 내세워 다른 투자자들을 안심시켜 줬습니다. 반면 SK커뮤니케이션즈는 돈은 댔지만 회사를 흡수해버린 셈이라 핵심 역량이라 할만한 초기멤버를 유지하는데 실패했죠. 티엘은 마크 저커버그가 비싼 사무실을 하버드 기숙사처럼 만들어놓고 사는 데 찬성했지만 SK커뮤니케이션즈 사람들은 싸이월드 사람들에게 대기업 문화를 가르쳤습니다. 또 SK커뮤니케이션즈는 훌륭한 조언자가 될 사람을 소개해주는 대신 점령군처럼 ‘본사’에서 내려온 사람들로 자리를 채우기 시작했고, 제2의 투자자나 훌륭한 고객을 소개하는 대신 싸이월드의 잘 나가던 모델을 안 나가던 SK식 서비스에 강제로 덧붙이기에 급급했습니다.

제가 조금 과장해서 얘기한 것일 수도 있겠죠. 하지만 좋은 투자자의 시의적절한 조언은 작은 아이디어가 세계적인 회사가 되도록 성장시키는 가장 중요한 밑거름입니다. 싸이월드의 과거를 생각할 때마다 아쉬워지는 건 그래서 다른 무엇보다 이런 좋은 조언자의 존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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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hugman
사단법인 한국엔지니어클럽

일 시: 2010년 6월 17일 (목) 오전 7시 30분

장 소: 서울특별시 강남구 테헤란로 521 그랜드 인터컨티넨탈 호텔 2층 국화룸


저는 지난 6월 10일 오후 5시 1분에 컴퓨터를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우리 나로호가 성공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여기에 계신 어르신들도 크셨겠지만 저도 엄청나게 컸습니다. 그런데 대략 6시쯤에 실패했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7시에 거의 그것이 확정되었습니다. 저는 성공을 너무너무 간절히 바랐습니다.

그날 연구실을 나오면서 이러한 생각으로 정리를 했습니다. 제가 그날 서운하고 속상했던 것은 나로호의 실패에도 있었지만 행여라도 나로호를 만들었던 과학자, 기술자들이 실망하지 않았을까 그분들이 의기소침하지 않았을까 그것이 더 가슴 아팠습니다. 그분들이 용기를 잃지 않고 더 일할 수 있기를 바라는 심정으로 어떻게 이것을 학생들에게 말해 주고 그분들에게 전해 줄까 하다가 그로부터 얼마 전에 이런 글을 하나 봤습니다.


1600년대에 프랑스에 라 포슈푸코라는 학자가 있었는데 그 학자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촛불은 바람이 불면 꺼진다. 그러나 큰 불은 바람이 불면 활활 타오른다.’라는 말을 했습니다. 저는 우리의 우주에 대한 의지가 강열하다면 또 우리 연구자, 과학자들의 의지가 강열하다면 나로호의 실패가 더 큰 불이 되어서 그 바람이 더 큰 불을 만나서 활활 타오르기를 진심으로 기대합니다.


○ 그런데 이 나로호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이러한 것도 바로 우리의 역사와 연관이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 실패가 사실은 너무도 당연하고 우리가 러시아의 신세를 지는 것을 국민이 부끄러움으로 여기지만 그것이 너무나도 당연하다는 것을 역사는 말해 주고 있습니다.


-1957 년입니다. 제가 초등학교 2학년 때 소련이 스푸트니크 1호라고 하는 인공위성을 발사했습니다. 그 충격은 대단했다고 하는데, 초등학교 학생인 저도 충격을 엄청나게 많이 받았습니다. 그러고 나서 미국이 깜짝 놀랐습니다. 그리고 뱅가드호를 발사했는데 뱅가드호는 지상 2m에서 폭발했습니다. 이것을 실패하고 미국이 본격적인 조사에 착수했습니다. 왜 소련은 성공하고 우리는 실패했는가, 그 연구보고서의 맨 마지막 페이지는 이렇게 끝이 나 있습니다.

‘우리나라(미국)가 중학교, 고등학교의 수학 교과과정을 바꿔야 한다.’ 아마 연세 드신 분들은 다 기억하실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은 소련이 스푸트니크 1호를 발사한 것도 독일 과학자들의 힘이었다는 것을 아실 것입니다. 미국이 뱅가드호를 실패하고 그 다음에 머큐리, 재미니, 여러분들이 아시는 아폴로계획에 의해서 우주사업이 성공했습니다. 그런데 그것도 미국의 힘이 아니라 폰 브라운이라고 하는 독일 미사일기술자를 데려다가 개발했다는 것도 여러분이 아실 것입니다.


○ 중국은 어떻게 되냐면 여기는 과학자들이니까 전학삼(錢學森)이라는 이름을 기억하실 텐데요, 전학삼은 상해 교통대학을 졸업하고 미국에 유학을 가서 캘리포니아에 공과대학에서 29살에 박사학위를 받고 캘리포니아 공과대학 교수를, 2차대전 때 미국 국방과학위원회의 미사일팀장을, 그리고 독일의 미사일기지 조사위원회 위원장을 했습니다. 미국에서는 핵심기술자입니다.


그런데 이 전학삼이라는 인물이1950년에 미사일에 관한 기밀문서를 가지고 중국으로 귀국하려다가 이민국에 적발되었습니다. 그래서 간첩혐의로 구금이 되었고 그때 미국에서는 ‘미국에 귀화해라. 미국에 귀화하면 너는 여기서 마음껏 연구할 수 있다.’라고 이야기했고 전학삼은 그것을 거절하고 있었습니다. 중국에서는 모택동이 미국 정부에 전학삼을 보내달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미국이 이 말을 들을 수밖에 없었던 것은 그때 중국 정부는 미국인 스파이를 하나 구속하고 있었고, 이 둘을 1 대 1로 교환하자고 그랬어요. 그런데 미국이 그 이야기를 들어주면서 전학삼에게 ‘마지막 기회를 주겠다, 우리는 너와 우리의 스파이를 교환하지만 네가 미국에 귀화한다면 너는 여기 있을 수 있다.’ 그랬더니 전학삼은 가겠다고 했어요. 그러니까 미국에서 전학삼에게 ‘너는 중국에 가더라도 책 한 권, 노트 한 권, 메모지 한 장도 가져갈 수 없다, 맨몸으로만 가라.’

그래도 전학삼은 가겠다고 했습니다.


나이 마흔여섯에 중국에 가서 모택동을 만났습니다. 여기서부터는 일화입니다.

모택동이 ‘우리도 인공위성을 쏘고 싶다, 할 수 있느냐.’ 그랬더니 전학삼이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내가 그것을 해낼 수 있다. 그런데 5년은 기초과학만 가르칠 것이다. 그 다음 5년은 응용과학만 가르친다. 그리고 그 다음 5년은 실제 기계제작에 들어가면 15년 후에 발사할 수 있다. 그러니까 나에게 그동안의 성과가 어떠하냐 등의 말을 절대 15년 이내에는 하지 마라. 그리고 인재들과 돈만 다오. 15년 동안 나에게 어떠한 성과에 관한 질문도 하지 않는다면 15년 후에는 발사할 수 있다.’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모택동이 그것을 들어 주었습니다. 그래서 인재와 돈을 대주고 15년 동안은 전학삼에게 아무것도 묻지 말라는 명령을 내려 놓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사람 나이 61세, 1970년 4월에 중국이 인공위성 발사에 성공했습니다. 그리고 중국 정부가 이 모든 발사제작의 책임자가 전학삼이라는 것을 공식 확인해 주었습니다.

이렇게 보면 오늘날 중국의 우주과학 이러한 것도 전부 전학삼에서 나왔는데 그것도 결국은 미국의 기술입니다. 미국은 독일의 기술이고 소련도 독일의 기술입니다. 저는 이런 이야기를 하면서 우리가 러시아의 신세를 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선진국도 다 그랬다는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 한국역사의 특수성


○ 미국이 우주과학을 발전시키기 위해서 중·고등학교의 수학 교과과정을 바꾸었다면 우리는 우리를 알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가, 결론은 그것 입니다.


-역사를 보는 방법도 대단히 다양한데요. 우리는 초등학교 때 이렇게 배웠습니다.

‘조선은 500년 만에 망했다.’ 아마 이 가운데서 초등학교 때 공부 잘하신 분들은 이걸 기억하실 것입니다. 500년 만에 조선이 망한 이유 4가지를 달달 외우게 만들었습니다. 기억나십니까?

“사색당쟁, 대원군의 쇄국정책, 성리학의 공리공론, 반상제도 등 4가지 때문에 망했다.” 이렇게 가르칩니다. 그러면 대한민국 청소년들은 어떻게 생각하느냐 하면

‘아, 우리는 500년 만에 망한 민족이구나, 그것도 기분 나쁘게 일본에게 망했구나.’ 하는 참담한 심정을 갖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아까 나로호의 실패를 중국, 미국, 소련 등 다른 나라에 비추어 보듯이 우리 역사도 다른 나라에 비추어 보아야 됩니다.

조선이 건국된 것이 1392년이고 한일합방이 1910년입니다. 금년이 2010년이니까 한일합방 된 지 딱 100년이 되는 해입니다. 그러면 1392년부터 1910년까지 세계 역사를 놓고 볼 때 다른 나라 왕조는 600년, 700년, 1,000년 가고 조선만 500년 만에 망했으면 왜 조선은 500년 만에 망했는가 그 망한 이유를 찾는 것이 맞을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 다른 나라에는 500년을 간 왕조가 그 당시에 하나도 없고 조선만 500년 갔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조선은 어떻게 해서 500년이나 갔을까 이것을 따지는 것이 맞을 것입니다.


-1300 년대의 역사 구도를 여러분이 놓고 보시면 전 세계에서 500년 간 왕조는 실제로 하나도 없습니다. 서구에서는 어떻게 됐느냐면, 신성로마제국이 1,200년째 계속되고 있었는데 그것은 제국이지 왕조가 아닙니다. 오스만투르크가 600년째 계속 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것도 제국이지 왕조는 아닙니다. 유일하게 500년 간 왕조가 하나 있습니다. 에스파냐왕국입니다. 그 나라가 500년째 가고 있었는데 불행히도 에스파냐왕국은 한 집권체가 500년을 지배한 것이 아닙니다.

예를 들면 나폴레옹이 ‘어, 이 녀석들이 말을 안 들어, 이거 안 되겠다. 형님, 에스파냐 가서 왕 좀 하세요.’ 그래서 나폴레옹의 형인 조셉 보나파르트가 에스파냐에 가서 왕을 했습니다. 이렇게 왔다 갔다 한 집권체이지 단일한 집권체가 500년 가지 못했습니다.


전세계에서 단일한 집권체가 518년째 가고 있는 것은 조선 딱 한 나라 이외에는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면 잠깐 위로 올라가 볼까요.

고려가 500년 갔습니다. 통일신라가 1,000년 갔습니다. 고구려가 700년 갔습니다. 백제가 700년 갔습니다. 신라가 BC 57년에 건국됐으니까 BC 57년 이후에 세계 왕조를 보면 500년 간 왕조가 딱 두 개 있습니다. 러시아의 이름도 없는 왕조가 하나 있고 동남 아시아에 하나가 있습니다. 그 외에는 500년 간 왕조가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니까 통일신라처럼 1,000년 간 왕조도 당연히 하나도 없습니다. 고구려, 백제만큼 700년 간 왕조도 당연히 하나도 없습니다.

제가 지금 말씀드린 것은 과학입니다.


-그러면 이 나라는 엄청나게 신기한 나라입니다. 한 왕조가 세워지면 500년, 700년, 1,000년을 갔습니다. 왜 그럴까요? 그럴려면 두 가지 조건 중에 하나가 성립해야 합니다.

하나는 우리 선조가 몽땅 바보다, 그래서 권력자들, 힘 있는 자들이 시키면 무조건 굴종했다, 그러면 세계 역사상 유례없이 500년, 700년, 1,000년 갔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선조들이 바보가 아니었다,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주장하고 다시 말씀드리면 인권에 관한 의식이 있고 심지어는 국가의 주인이라고 하는 의식이 있다면, 또 잘 대드는 성격이 있다면, 최소한도의 정치적인 합리성, 최소한도의 경제적인 합리성, 조세적인 합리성, 법적인 합리성, 문화의 합리성 이러한 것들이 있지 않으면 전 세계 역사상 유례없는 이러한 장기간의 통치가 불가능할 것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 기록의 정신


○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을 보면 25년에 한 번씩 민란이 일어납니다.


여러분이 아시는 동학란이나 이런 것은 전국적인 규모이고, 이 민란은 요새 말로 하면 대규모의 데모에 해당합니다. 우리는 상소제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백성들이, 기생도 노비도 글만 쓸 수 있으면 ‘왕과 나는 직접 소통해야겠다, 관찰사와 이야기하니까 되지를 않는다.’ 왕한테 편지를 보냅니다. 그런데 이런 상소제도에 불만을 가진 사람들이 생겨났습니다. 왜? 편지를 하려면 한문 꽤나 써야 되잖아요. ‘그럼 글 쓰는 사람만 다냐, 글 모르면 어떻게 하느냐’ 그렇게 해서 나중에는 언문상소를 허락해 주었습니다.


그래도 불만 있는 사람들이 나타났습니다. ‘그래도 글줄 깨나 해야 왕하고 소통하느냐, 나도 하고 싶다’ 이런 불만이 터져 나오니까 신문고를 설치했습니다. ‘그럼 와서 북을 쳐라’ 그러면 형조의 당직관리가 와서 구두로 말을 듣고 구두로 왕에게 보고했습니다. 이래도 또 불만이 터져 나왔습니다. 여러분, 신문고를 왕궁 옆에 매달아 놨거든요. 그러니까 지방 사람들이 뭐라고 했냐면 ‘왜 한양 땅에 사는 사람들만 그걸하게 만들었느냐, 우리는 뭐냐’ 이렇게 된 겁니다. 그래서 격쟁(?錚)이라는 제도가 생겼습니다. 격은 칠격(?)자이고 쟁은 꽹과리 쟁(錚)자입니다. 왕이 지방에 행차를 하면 꽹과리나 징을 쳐라. 혹은 대형 플래카드를 만들어서 흔들어라, 그럼 왕이 ‘무슨 일이냐’ 하고 물어봐서 민원을 해결해 주었습니다. 이것을 격쟁이라고 합니다.


○ 우리는 이러한 제도가 흔히 형식적인 제도겠지 라고 생각하지만 그게 아닙니다.

예를 들어 정조의 행적을 조사해 보면, 정조가 왕 노릇을 한 것이 24년입니다. 24년 동안 상소, 신문고, 격쟁을 해결한 건수가 5,000건 입니다. 이것을 제위 연수를 편의상 25년으로 나누어보면 매년 200건을 해결했다는 얘기이고 공식 근무일수로 따져보면 매일 1건 이상을 했다는 것입니다.


영조 같은 왕은 백성들이 너무나 왕을 직접 만나고 싶어 하니까 아예 날짜를 정하고 장소를 정해서 ‘여기에 모이시오.’ 해서 정기적으로 백성들을 만났습니다. 여러분, 서양의 왕 가운데 이런 왕 보셨습니까? 이것이 무엇을 말하느냐면 이 나라 백성들은 그렇게 안 해주면 통치할 수 없으니까 이러한 제도가 생겼다고 봐야 합니다.

그러면 이 나라 국민들은 바보가 아닙니다. 그렇게 보면 아까 말씀 드린 두 가지 사항 가운데 후자에 해당합니다. 이 나라 백성들은 만만한 백성이 아니다. 그러면 최소한도의 합리성이 있었을 것이다. 그 합리성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오늘 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첫째는 조금 김새시겠지만 기록의 문화입니다.여러분이 이집트에 가 보시면, 저는 못 가봤지만 스핑크스가 있습니다. 그걸 딱 보면 어떠한 생각을 할까요? 중국에 가면 만리장성이 있습니다. 아마도 여기 계신 분들은 거의 다 이런 생각을 하셨을 것입니다. ‘이집트 사람, 중국 사람들은 재수도 좋다, 좋은 선조 만나서 가만히 있어도 세계의 관광달러가 모이는 구나’

여기에 석굴암을 딱 가져다 놓으면 좁쌀보다 작습니다. 우리는 뭐냐. 이런 생각을 하셨지요? 저도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 역사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보니까 그러한 유적이 우리에게 없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싶습니다. 베르사유의 궁전같이 호화찬란한 궁전이 없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싶습니다.


여러분, 만약 조선시대에 어떤 왕이 등극을 해서 피라미드 짓는 데 30만 명 동원해서 20년 걸렸다고 가정을 해보죠. 그 왕이 ‘국민 여러분, 조선백성 여러분, 내가 죽으면 피라미드에 들어가고 싶습니다. 그러니 여러분의 자제 청·장년 30만 명을 동원해서 한 20년 노역을 시켜야겠으니 조선백성 여러분, 양해하시오.’

그랬으면 무슨 일이 났을 것 같습니까? ‘마마, 마마가 나가시옵소서.’ 이렇게 되지 조선백성들이 20년 동안 그걸 하고 앉아있습니까? 안 하지요. 그러니까 우리에게는 그러한 문화적 유적이 남아 있을 수 없습니다. 만일 어떤 왕이 베르사유궁전 같은 것을 지으려고 했으면 무슨 일이 났겠습니까. ‘당신이 나가시오, 우리는 그런 것을 지을 생각이 없소.’ 이것이 정상적일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에게는 그러한 유적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대신에 무엇을 남겨 주었느냐면 기록을 남겨주었습니다. 여기에 왕이 있다면, 바로 곁에 사관이 있습니다.

여러분, 이렇게 생각하시면 간단합니다. 여러분께서 아침에 출근을 딱 하시면, 어떠한 젊은이가 하나 달라붙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하시는 말을 다 적고, 여러분이 만나는 사람을 다 적고, 둘이 대화한 것을 다 적고, 왕이 혼자 있으면 혼자 있다, 언제 화장실 갔으면 화장실 갔다는 것도 다 적고, 그것을 오늘 적고, 내일도 적고, 다음 달에도 적고 돌아가신 날 아침까지 적습니다. 기분이 어떠실 것 같습니까?

공식근무 중 사관이 없이는 왕은 그 누구도 독대할 수 없다고 경국대전에 적혀 있습니다. 우리가 사극에서 살살 간신배 만나고 장희빈 살살 만나고 하는 것은 다 거짓말입니다. 왕은 공식근무 중 사관이 없이는 누구도 만날 수 없게 되어 있습니다.


심지어 인조 같은 왕은 너무 사관이 사사건건 자기를 쫓아다니는 것이 싫으니까 어떤 날 대신들에게 ‘내일은 저 방으로 와, 저 방에서 회의할 거야.’ 그러고 도망갔습니다. 거기서 회의를 하고 있었는데 사관이 마마를 놓쳤습니다. 어디 계시냐 하다가 지필묵을 싸들고 그 방에 들어갔습니다. 인조가 ‘공식적인 자리가 아닌 데서 회의를 하는데도 사관이 와야 되는가?’ 그러니까 사관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마마, 조선의 국법에는 마마가 계신 곳에는 사관이 있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적었습니다.

너무 그 사관이 괘씸해서 다른 죄목을 걸어서 귀향을 보냈습니다. 그러니까 다음 날 다른 사관이 와서 또 적었습니다. 이렇게 500년을 적었습니다.


사관은 종7품에서 종9품 사이입니다. 오늘날 대한민국의 공무원제도에 비교를 해보면 아무리 높아도 사무관을 넘지 않습니다. 그러한 사람이 왕을 사사건건 따라 다니며 다 적습니다. 이걸 500년을 적는데, 어떻게 했냐면 한문으로 써야 하니까 막 흘려 썼을 것 아닙니까? 그날 저녁에 집에 와서 정서를 했습니다. 이걸 사초라고 합니다.

그러다가 왕이 돌아가시면 한 달 이내, 이것이 중요합니다. 한 달 이내에 요새 말로 하면 왕조실록 편찬위원회를 구성합니다. 사관도 잘못 쓸 수 있잖아요. 그러니까 ‘영의정, 이러한 말 한 사실이 있소? 이러한 행동한 적이 있소?’ 확인합니다. 그렇게 해서 즉시 출판합니다. 4부를 출판했습니다. 4부를 찍기 위해서 목판활자, 나중에는 금속활자본을 만들었습니다.


여러분, 4부를 찍기 위해서 활자본을 만드는 것이 경제적입니까, 사람이 쓰는 것이 경제적입니까? 쓰는 게 경제적이지요. 그런데 왜 활판인쇄를 했느냐면 사람이 쓰면 글자 하나 빼먹을 수 있습니다. 글자 하나 잘못 쓸 수 있습니다. 하나 더 쓸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해서 후손들에게 4부를 남겨주는데 사람이 쓰면 4부가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러면 후손들이 어느 것이 정본인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목판활자, 금속활자본을 만든 이유는 틀리더라도 똑같이 틀려라, 그래서 활자본을 만들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500년 분량을 남겨주었습니다.


유네스코에서 조사를 했습니다. 왕의 옆에서 사관이 적고 그날 저녁에 정서해서 왕이 죽으면 한 달 이내에 출판 준비에 들어가서 만들어낸 역사서를 보니까 전 세계에 조선만이 이러한 기록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이 6,400만자입니다. 6,400만자 하면 좀 적어 보이지요? 그런데 6,400만자는 1초에 1자씩 하루 4시간을 보면 11.2년 걸리는 분량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나라에는 공식적으로 "조선왕조실록"을 다룬 학자는 있을 수가 없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러한 생각 안 드세요? ‘사관도 사람인데 공정하게 역사를 기술했을까’ 이런 궁금증이 가끔 드시겠지요? 사관이 객관적이고 공정한 역사를 쓰도록 어떤 시스템을 가지고 있었는지를 말씀드리죠.

세종이 집권하고 나서 가장 보고 싶은 책이 있었습니다. 뭐냐 하면 태종실록입니다. ‘아버지의 행적을 저 사관이 어떻게 썼을까?’ 너무너무 궁금해서 태종실록을 봐야겠다고 했습니다. 맹사성이라는 신하가 나섰습니다.

‘보지 마시옵소서.’ ‘왜, 그런가.’ ‘마마께서 선대왕의 실록을 보시면 저 사관이 그것이 두려워서 객관적인 역사를 기술할 수 없습니다.’

세종이 참았습니다. 몇 년이 지났습니다. 또 보고 싶어서 환장을 했습니다. 그래서 ‘선대왕의 실록을 봐야겠다.’ 이번에는 핑계를 어떻게 댔느냐면 ‘선대왕의 실록을 봐야 그것을 거울삼아서 내가 정치를 잘할 것이 아니냐’

그랬더니 황 희 정승이 나섰습니다. ‘마마, 보지 마시옵소서.’ ‘왜, 그런가.’

‘마마께서 선대왕의 실록을 보시면 이 다음 왕도 선대왕의 실록을 보려 할 것이고 다음 왕도 선대왕의 실록을 보려할 것입니다. 그러면 저 젊은 사관이 객관적인 역사를 기술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마마께서도 보지 마시고 이다음 조선왕도 영원히 실록을 보지 말라는 교지를 내려주시옵소서.’ 그랬습니다.

이걸 세종이 들었겠습니까, 안 들었겠습니까? 들었습니다. ‘네 말이 맞다. 나도 영원히 안 보겠다. 그리고 조선의 왕 누구도 실록을 봐서는 안 된다’는 교지를 내렸습니다. 그래서 조선의 왕 누구도 실록을 못 보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실은 중종은 슬쩍 봤습니다. 봤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그 누구도 안보는 것이 원칙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여러분, 왕이 못 보는데 정승판서가 봅니까? 정승판서가 못 보는데 관찰사가 봅니까? 관찰사가 못 보는데 변 사또가 봅니까?

이런 사람이 못 보는데 국민이 봅니까? 여러분, 문제는 여기에 있습니다.

조선시대 그 어려운 시대에 왕의 하루하루의 그 행적을 모든 정치적인 상황을 힘들게 적어서 아무도 못 보는 역사서를 500년을 썼습니다. 누구 보라고 썼겠습니까?


대한민국 국민 보라고 썼습니다.


저는 이런 생각을 합니다. 이 땅은 영원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핏줄 받은 우리 민족이 이 땅에서 영원히 살아갈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의 후손들이여, 우리는 이렇게 살았으니 우리가 살았던 문화, 제도, 양식을 잘 참고해서 우리보다 더 아름답고 멋지고 강한 나라를 만들어라, 이러한 역사의식이 없다면 그 어려운 시기에 왕도 못 보고 백성도 못 보고 아무도 못 보는 그 기록을 어떻게 해서 500년이나 남겨주었겠습니까.

"조선왕조실록"은 한국인의 보물일 뿐 아니라 인류의 보물이기에, 유네스코가 세계기록문화유산으로 지정을 해 놨습니다.


○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가 있습니다. 승정원은 오늘날 말하자면 청와대비서실입니다. 사실상 최고 권력기구지요. 이 최고 권력기구가 무엇을 하냐면 ‘왕에게 올릴 보고서, 어제 받은 하명서, 또 왕에게 할 말’ 이런 것들에 대해 매일매일 회의를 했습니다. 이 일지를 500년 동안 적어 놓았습니다. 아까 실록은 그날 밤에 정서했다고 했지요. 그런데 ‘승정원일기’는 전월 분을 다음 달에 정리했습니다. 이 ‘승정원일기’를 언제까지 썼느냐면 조선이 망한 해인 1910년까지 썼습니다. 누구 보라고 써놓았겠습니까? 대한민국 국민 보라고 썼습니다. 유네스코가 조사해보니 전 세계에서 조선만이 그러한 기록을 남겨 놓았습니다. 그런데 ‘승정원일기’는 임진왜란 때 절반이 불타고 지금 288년 분량이 남아있습니다. 이게 몇 자냐 하면 2억 5,000만자입니다. 요새 국사편찬위원회에서 이것을 번역하려고 조사를 해 보니까 잘하면 앞으로 50년 후에 끝나고 못하면 80년 후에 끝납니다. 이러한 방대한 양을 남겨주었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선조입니다.


○ ‘일성록(日省錄)’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날 日자, 반성할 省자입니다. 왕들의 일기입니다. 정조가 세자 때 일기를 썼습니다. 그런데 왕이 되고 나서도 썼습니다. 선대왕이 쓰니까 그 다음 왕도 썼습니다. 선대왕이 썼으니까 손자왕도 썼습니다. 언제까지 썼느냐면 나라가 망하는 1910년까지 썼습니다.

아까 ‘조선왕조실록’은 왕들이 못 보게 했다고 말씀 드렸지요. 선대왕들이 이러한 경우에 어떻게 정치했는가를 지금 왕들이 알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는가를 정조가 고민해서 기왕에 쓰는 일기를 체계적, 조직적으로 썼습니다. 국방에 관한 사항, 경제에 관한 사항, 과거에 관한 사항, 교육에 관한 사항 이것을 전부 조목조목 나눠서 썼습니다.

여러분, 150년 분량의 제왕의 일기를 가진 나라를 전 세계에 가서 찾아보십시오. 저는 우리가 서양에 가면 흔히들 주눅이 드는데 이제부터는 그럴 필요 없다고 생각을 합니다.


저는 언젠가는 이루어졌으면 하는 꿈과 소망이 있습니다. 이러한 책들을 전부 한글로 번역합니다. 이 가운데 ‘조선왕조실록’은 개략적이나마 번역이 되어 있고 나머지는 손도 못 대고 있습니다. 이것을 번역하고 나면 그 다음에 영어로 하고 핀란드어로 하고 노르웨이어로 하고 덴마크어로 하고 스와힐리어로 하고 전 세계 언어로 번역합니다. 그래서 컴퓨터에 탑재한 다음날 전 세계 유수한 신문에 전면광고를 냈으면 좋겠습니다.

‘세계인 여러분, 아시아의 코리아에 150년간의 제왕의 일기가 있습니다. 288년간의 최고 권력기구인 비서실의 일기가 있습니다. 실록이 있습니다. 혹시 보시고 싶으십니까? 아래 주소를 클릭하십시오. 당신의 언어로 볼 수 있습니다.’

해서 이것을 본 세계인이 1,000만이 되고, 10억이 되고 20억이 되면 이 사람들은 코리안들을 어떻게 생각할 것 같습니까.

‘야, 이놈들 보통 놈들이 아니구나. 어떻게 이러한 기록을 남기는가, 우리나라는 뭔가.’이러한 의식을 갖게 되지 않겠습니까. 그게 뭐냐면 국격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한국이라고 하는 브랜드가 그만큼 세계에서 올라가는 것입니다. 우리의 선조들은 이러한 것을 남겨주었는데 우리가 지금 못 하고 있을 뿐입니다.


○ 이러한 기록 중에 지진에 대해 제가 조사를 해 보았습니다. '삼국사기(三國史記)'에는 지진이 87회 기록되어 있습니다. ‘삼국유사(三國遺事)’에는 3회 기록되어 있습니다. ‘고려사(高麗史)’에는 249회의 지진에 관한 기록이 있습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2,029회 나옵니다. 다 합치면 2,368회의 지진에 관한 기록이 있습니다.


우리 방폐장, 핵발전소 만들 때 이것을 참고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을 통계를 내면 어느 지역에서는 155년마다 한 번씩 지진이 났었을 수 있습니다. 어느 지역은 200년마다 한 번씩 지진이 났었을 수 있습니다. 이러한 지역을 다 피해서 2000년 동안 지진이 한 번도 안 난 지역에 방폐장, 핵발전소 만드는 것이 맞을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방폐장, 핵발전소 만들면 세계인들이 틀림없이 산업시찰을 올 것입니다. 그러면 수력발전소도 그런 데 만들어야지요. 정문에 구리동판을 세워놓고 영어로 이렇게 썼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민족이 가진 2,000년 동안의 자료에 의하면 이 지역은 2,000년 동안 단 한번도 지진이 발생하지 않았다. 따라서 이곳에 방폐장, 핵발전소, 수력발전소를 만든다. 대한민국 국민 일동.’

이렇게 하면 전 세계인들이 이것을 보고 ‘정말 너희들은 2,000년 동안의 지진에 관한 기록이 있느냐?’고 물어볼 것이고, 제가 말씀드린 책을 카피해서 기록관에 하나 갖다 놓으면 됩니다.


이 지진의 기록도 굉장히 구체적입니다. 어떻게 기록이 되어 있느냐 하면 ‘우물가의 버드나무 잎이 흔들렸다’ 이것이 제일 약진입니다. ‘흙담에 금이 갔다, 흙담이 무너졌다, 돌담에 금이 갔다, 돌담이 무너졌다, 기왓장이 떨어졌다, 기와집이 무너졌다‘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현재 지진공학회에서는 이것을 가지고 리히터 규모로 계산을 해 내고 있습니다. 대략 강진만 뽑아보니까 통일신라 이전까지 11회 강진이 있었고 고려시대에는 11회 강진이, 조선시대에는 26회의 강진이 있었습니다. 합치면 우리는 2,000년 동안 48회의 강진이 이 땅에 있었습니다.

이러한 것을 계산할 수 있는 자료를 신기하게도 선조들은 우리에게 남겨주었습니다.


◈ 정치, 경제적 문제


○ 그 다음에 조세에 관한 사항을 보시겠습니다.


세종이 집권을 하니 농민들이 토지세 제도에 불만이 많다는 상소가 계속 올라옵니다. 세종이 말을 합니다.

‘왜 이런 일이 나는가?’ 신하들이 ‘사실은 고려 말에 이 토지세 제도가 문란했는데 아직까지 개정이 안 되었습니다.’

세종의 리더십은 ‘즉시 명령하여 옳은 일이라면 현장에서 해결 한다’는 입장입니다. 그래서 개정안이 완성되었습니다. 세종12년 3월에 세종이 조정회의에 걸었지만 조정회의에서 부결되었습니다. 왜 부결 되었냐면 ‘마마, 수정안이 원래의 현행안보다 농민들에게 유리한 것은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농민들이 좋아할지 안 좋아할지 우리는 모릅니다.’ 이렇게 됐어요. ‘그러면 어떻게 하자는 말이냐’ 하다가 기발한 의견이 나왔어요.

‘직접 물어봅시다.’ 그래서 물어보는 방법을 찾는 데 5개월이 걸렸습니다. 세종12년 8월에 국민투표를 실시했습니다. 그 결과 찬성 9만 8,657표, 반대 7만 4,149표 이렇게 나옵니다. 찬성이 훨씬 많지요. 세종이 조정회의에 다시 걸었지만 또 부결되었습니다. 왜냐하면 대신들의 견해는 ‘마마, 찬성이 9만 8,000, 반대가 7만 4,000이니까 찬성이 물론 많습니다. 그러나 7만 4,149표라고 하는 반대도 대단히 많은 것입니다. 이 사람들이 상소를 내기 시작하면 상황은 전과 동일합니다.’ 이렇게 됐어요.


세종이 ‘그러면 농민에게 더 유리하도록 안을 만들어라.’해서 안이 완성되었습니다. 그래서 실시하자 그랬는데 또 부결이 됐어요. 그 이유는 ‘백성들이 좋아할지 안 좋아할지 모릅니다.’였어요. ‘그러면 어떻게 하자는 말이냐’하니 ‘조그마한 지역에 시범실시를 합시다.’ 이렇게 됐어요.

시범실시를 3년 했습니다. 결과가 성공적이라고 올라왔습니다. ‘전국에 일제히 실시하자’고 다시 조정회의에 걸었습니다. 조정회의에서 또 부결이 됐어요. ‘마마, 농지세라고 하는 것은 토질이 좋으면 생산량이 많으니까 불만이 없지만 토질이 박하면 생산량이 적으니까 불만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지역과 토질이 전혀 다른 지역에도 시범실시를 해 봐야 됩니다.’ 세종이 그러라고 했어요. 다시 시범실시를 했어요. 성공적이라고 올라왔어요.

세종이 ‘전국에 일제히 실시하자’고 다시 조정회의에 걸었습니다. 또 부결이 됐습니다. 이유는 ‘마마, 작은 지역에서 이 안을 실시할 때 모든 문제점을 우리는 토론했습니다. 그러나 전국에서 일제히 실시할 때 무슨 문제가 나는지를 우리는 토론한 적이 없습니다.’ 세종이 토론하라 해서 세종25년 11월에 이 안이 드디어 공포됩니다.

조선시대에 정치를 이렇게 했습니다. 세종이 백성을 위해서 만든 개정안을 정말 백성이 좋아할지 안 좋아할지를 국민투표를 해 보고 시범실시를 하고 토론을 하고 이렇게 해서 13년만에 공포·시행했습니다.


대한민국정부가 1945년 건립되고 나서 어떤 안을 13년 동안 이렇게 연구해서 공포·실시했습니까. 저는 이러한 정신이 있기 때문에 조선이 500년이나 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 법률 문제


○ 법에 관한 문제를 보시겠습니다.


우리가 오늘날 3심제를 하지 않습니까? 조선시대에는 어떻게 했을 것 같습니까? 조선시대에 3심제는 없었습니다. 그런데 사형수에 한해서는 3심제를 실시했습니다. 원래는 조선이 아니라 고려 말 고려 문종 때부터 실시했는데, 이를 삼복제(三覆制)라고 합니다.

조선시대에 사형수 재판을 맨 처음에는 변 사또 같은 시골 감형에서 하고, 두 번째 재판은 고등법원, 관찰사로 갑니다. 옛날에 지방관 관찰사는 사법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마지막 재판은 서울 형조에 와서 받았습니다. 재판장은 거의 모두 왕이 직접 했습니다. 왕이 신문을 했을 때 그냥 신문한 것이 아니라 신문한 것을 옆에서 받아썼어요. 조선의 기록정신이 그렇습니다. 기록을 남겨서 그것을 책으로 묶었습니다.

그 책 이름이 ‘심리록(審理錄)’이라는 책입니다. 정조가 1700년대에 이 '심리록'을 출판했습니다. 오늘날 번역이 되어 큰 도서관에 가시면 ‘심리록’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왕이 사형수를 직접 신문한 내용이 거기에 다 나와 있습니다.

왕들은 뭐를 신문했냐 하면 이 사람이 사형수라고 하는 증거가 과학적인가 아닌가 입니다. 또 한 가지는 고문에 의해서 거짓 자백한 것이 아닐까를 밝히기 위해서 왕들이 무수히 노력합니다. 이 증거가 맞느냐 과학적이냐 합리적이냐 이것을 계속 따집니다. 이래서 상당수의 사형수는 감형되거나 무죄 석방되었습니다.

이런 것이 조선의 법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조선이 500년이나 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 과학적 사실


○ 다음에는 과학에 대해 말씀 드리겠습니다.


코페르니쿠스가 태양이 아니라 지구가 돈다고 지동설을 주장한 것이 1543년입니다. 그런데 코페르니쿠스의 주장에는 이미 다 아시겠지만 물리학적 증명이 없었습니다. 물리학적으로 지구가 돈다는 것을 증명한 것은 1632년에 갈릴레오가 시도했습니다. 종교법정이 그를 풀어주면서도 갈릴레오의 책을 보면 누구나 지동설을 믿을 수밖에 없으니까 책은 출판금지를 시켰습니다. 그 책이 인류사에 나온 것은 그로부터 100년 후입니다. 1767년에 인류사에 나왔습니다.


-동양에서는 어떠냐 하면 지구는 사각형으로 생겼다고 생각했습니다. 하늘은 둥글고 지구는 사각형이다, 이를 천원지방설(天圓地方說)이라고 얘기합니다. 그런데 실은 동양에서도 지구는 둥글 것이라고 얘기한 사람들이 상당히 많았습니다. 대표적인 사람이 여러분들이 아시는 성리학자 주자입니다, 주희. 주자의 책을 보면 지구는 둥글 것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황진이의 애인, 고려시대 학자 서화담의 책을 봐도 ‘지구는 둥글 것이다, 지구는 둥글어야 한다, 바닷가에 가서 해양을 봐라 지구는 둥글 것이다’ 이렇게 주장했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어떠한 형식이든 증명한 것이 1400년대 이순지(李純之)라고 하는 세종시대의 학자입니다. 이순지는 지구는 둥글다고 선배 학자들에게 주장했습니다. 그는 ‘일식의 원리처럼 태양과 달 사이에 둥근 지구가 들어가고 그래서 지구의 그림자가 달에 생기는 것이 월식이다, 그러니까 지구는 둥글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것이 1400년대입니다. 그러니까 선배 과학자들이 ‘그렇다면 우리가 일식의 날짜를 예측할 수 있듯이 월식도 네가 예측할 수 있어야 할 것 아니냐’고 물었습니다. 이순지는 모년 모월 모시 월식이 생길 것이라고 했고 그날 월식이 생겼습니다. 이순지는 ‘교식추보법(交食推步法)’이라는 책을 썼습니다. 일식, 월식을 미리 계산해 내는 방법이라는 책입니다. 그 책은 오늘날 남아 있습니다.


이렇게 과학적인 업적을 쌓아가니까 세종이 과학정책의 책임자로 임명했습니다. 이때 이순지의 나이 약관 29살입니다. 그리고 첫 번째 준 임무가 조선의 실정에 맞는 달력을 만들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동지상사라고 많이 들어보셨지요? 동짓달이 되면 바리바리 좋은 물품을 짊어지고 중국 연변에 가서 황제를 배알하고 뭘 얻어 옵니다. 다음 해의 달력을 얻으러 간 것입니다. 달력을 매년 중국에서 얻어 와서는 자주독립국이 못될뿐더러, 또 하나는 중국의 달력을 갖다 써도 해와 달이 뜨는 시간이 다르므로 사리/조금의 때가 정확하지 않아요.

그러니까 조선 땅에 맞는 달력이 필요하다 이렇게 됐습니다. 수학자와 천문학자가 총 집결을 했습니다. 이순지가 이것을 만드는데 세종한테 그랬어요.

‘못 만듭니다.’

‘왜?’

‘달력을 서운관(書雲觀)이라는 오늘날의 국립기상천문대에서 만드는데 여기에 인재들이 오지 않습니다.’

‘왜 안 오는가?’

‘여기는 진급이 느립니다.’ 그랬어요.

오늘날 이사관쯤 되어 가지고 국립천문대에 발령받으면 물 먹었다고 하지 않습니까? 행정안전부나 청와대비서실 이런 데 가야 빛 봤다고 하지요? 옛날에도 똑같았어요. 그러니까 세종이 즉시 명령합니다.

‘서운관의 진급속도를 제일 빠르게 하라.’

‘그래도 안 옵니다.’

‘왜?’

‘서운관은 봉록이 적습니다.’

‘봉록을 올려라.’ 그랬어요.

‘그래도 인재들이 안 옵니다.’

‘왜?’

‘서운관 관장이 너무나 약합니다.’

‘그러면 서운관 관장을 어떻게 할까?’

‘강한 사람을 보내주시옵소서. 왕의 측근을 보내주시옵소서.’

세종이 물었어요. ‘누구를 보내줄까?’

누구를 보내달라고 했는 줄 아십니까?

‘정인지를 보내주시옵소서.’ 그랬어요. 정인지가 누구입니까? 고려사를 쓰고 한글을 만들고 세종의 측근 중의 측근이고 영의정입니다.


세종이 어떻게 했을 것 같습니까? 영의정 정인지를 서운관 관장으로 겸임 발령을 냈습니다. 그래서 1,444년에 드디어 이 땅에 맞는 달력을 만드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순지는 당시 가장 정확한 달력이라고 알려진 아라비아의 회회력의 체제를 몽땅 분석해 냈습니다. 일본학자가 쓴 세계천문학사에는 회회력을 가장 과학적으로 정교하게 분석한 책이 조선의 이순지著 ‘칠정산외편(七政算外篇)’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그런데 달력이 하루 10분, 20분, 1시간 틀려도 모릅니다. 한 100년, 200년 가야 알 수 있습니다. 이 달력이 정확한지 안 정확한지를 어떻게 아냐면 이 달력으로 일식을 예측해서 정확히 맞으면 이 달력이 정확한 것입니다. 이순지는 '칠정산외편'이라는 달력을 만들어 놓고 공개를 했습니다. 1,447년 세종 29년 음력 8월 1일 오후 4시 50분 27초에 일식이 시작될 것이고 그날 오후 6시 55분 53초에 끝난다고 예측했습니다. 이게 정확하게 맞아떨어졌습니다. 세종이 너무나 반가워서 그 달력의 이름을 ‘칠정력’이라고 붙여줬습니다. 이것이 그 후에 200년간 계속 사용되었습니다.


여러분 1,400년대 그 당시에 자기 지역에 맞는 달력을 계산할 수 있고 일식을 예측할 수 있는 나라는 전 세계에 세 나라밖에 없었다고 과학사가들은 말합니다. 하나는 아라비아, 하나는 중국, 하나는 조선입니다.

그런데 이순지가 이렇게 정교한 달력을 만들 때 달력을 만든 핵심기술이 어디 있냐면 지구가 태양을 도는 시간을 얼마나 정교하게 계산해 내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칠정산외편’에 보면 이순지는 지구가 태양을 도는 데 걸리는 시간은 365일 5시간 48분 45초라고 계산해 놓았습니다. 오늘날 물리학적인 계산은 365일 5시간 48분 46초입니다. 1초 차이가 나게 1400년대에 계산을 해냈습니다. 여러분, 그 정도면 괜찮지 않습니까?


-홍대용이라는 사람은 수학을 해서 ‘담헌서(湛軒書)’라는 책을 썼습니다. ‘담헌서’는 한글로 번역되어 큰 도서관에는 다 있습니다. 이 ‘담헌서’ 가운데 제5권이 수학책입니다. 홍대용이 조선시대에 발간한 수학책의 문제가 어떤지 설명 드리겠습니다. ‘구체의 체적이 6만 2,208척이다. 이 구체의 지름을 구하라.’ cos, sin, tan가 들어가야 할 문제들이 쫙 깔렸습니다. 조선시대의 수학책인 ‘주해수용(籌解需用)’에는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sinA를 한자로 正弦, cosA를 餘弦, tanA를 正切, cotA를 餘切, secA를 正割, cosecA를 如割, 1-cosA를 正矢, 1-sinA를 餘矢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이런 것이 있으려면 삼각함수표가 있어야 되잖아요. 이 ‘주해수용’의 맨 뒤에 보면 삼각함수표가 그대로 나와 있습니다. 제가 한 번 옮겨봤습니다.

예를 들면 正弦 25도 42분 51초, 다시 말씀 드리면 sin25.4251도의 값은 0.4338883739118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제가 이것을 왜 다 썼느냐 하면 소수점 아래 몇 자리까지 있나 보려고 제가 타자로 다 쳐봤습니다. 소수점 아래 열세 자리까지 있습니다. 이만하면 조선시대 수학책 괜찮지 않습니까?


다른 문제 또 하나 보실까요? 甲地와 乙地는 동일한 子午眞線에 있다. 조선시대 수학책 문제입니다. 이때는 子午線이라고 안 하고 子午眞線이라고 했습니다. 이런 것을 보면 이미 이 시대가 되면 지구는 둥글다고 하는 것이 보편적인 지식이 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甲地와 乙地는 동일한 子午線上에 있다. 甲地는 北極出地, 北極出地는 緯度라는 뜻입니다. 甲地는 緯度 37도에 있고 乙地는 緯度 36도 30분에 있다. 甲地에서 乙地로 직선으로 가는데 고뢰(鼓?)가 12번 울리고 종료(鍾鬧)가 125번 울렸다. 이때 지구 1도의 里數와 지구의 지름, 지구의 둘레를 구하라. 이러한 문제입니다.


이 고뢰(鼓? ) , 종료(鍾鬧)는 뭐냐 하면 여러분 김정호가 그린 대동여지도를 초등학교 때 사회책에서 보면 오늘날의 지도와 상당히 유사하지 않습니까? 옛날 조선시대의 지도가 이렇게 오늘날 지도와 비슷했을까? 이유는 축척이 정확해서 그렇습니다. 대동여지도는 십리 축척입니다. 십리가 한 눈금으로 되어 있는데 이것이 왜 정확하냐면 기리고거(記里鼓車)라고 하는 수레를 끌고 다녔습니다.

기리고거가 뭐냐 하면 기록할 記자, 리는 백리 2백리 하는 里자, 里數를 기록하는, 고는 북 鼓자, 북을 매단 수레 車, 수레라는 뜻입니다. 어떻게 만들었냐 하면 수레가 하나 있는데 중국의 동진시대에 나온 수레입니다. 바퀴를 정확하게 원둘레가 17척이 되도록 했습니다. 17척이 요새의 계산으로 하면 대략 5미터입니다. 이것이 100바퀴를 굴러가면 그 위에 북을 매달아놨는데 북을 ‘뚱’하고 치게 되어 있어요. 북을 열 번 치면 그 위에 종을 매달아놨는데 종을 ‘땡’하고 치게 되어 있어요. 여기 고뢰, 종료라고 하는 것이 그것입니다. 그러니까 이것이 5km가 되어서 딱 10리가 되면 종이 ‘땡’하고 칩니다. 김정호가 이것을 끌고 다녔습니다.


우리 세종이 대단한 왕입니다. 몸에 피부병이 많아서 온양온천을 자주 다녔어요. 그런데 온천에 다닐 때도 그냥 가지 않았습니다. 이 기리고거를 끌고 갔어요. 그래서 한양과 온양 간이라도 길이를 정확히 계산해 보자 이런 것을 했었어요. 이것을 가지면 지구의 지름, 지구의 둘레를 구할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그러니까 원주를 파이로 나누면 지름이다 하는 것이 이미 보편적인 지식이 되어 있었습니다.


◈ 수학적 사실


○ 그러면 우리 수학의 씨는 어디에 있었을까 하는 것인데요,


여러분 불국사 가보시면 건물 멋있잖아요. 석굴암도 멋있잖아요. 불국사를 지으려면 건축학은 없어도 건축술은 있어야 할 것이 아닙니까, 최소한 건축술이 있으려면 물리학은 없어도 물리술은 있어야 할 것 아닙니까. 물리술이 있으려면 수학은 없어도 산수는 있어야 할 것 아닙니까? 이게 제가 고등학교 3학년 때 가졌던 의문입니다, 이것을 어떻게 지었을까.

그런데 저는 ‘삼국사기’의 저자 김부식 선생님을 너무 너무 존경합니다. 여러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이 어디인 줄 아십니까? 에스파냐, 스페인에 있습니다. 1490년대에 국립대학이 세워졌습니다. 여러분이 아시는 옥스퍼드와 캠브리지는 1600년대에 세워진 대학입니다. 우리는 언제 국립대학이 세워졌느냐, ‘삼국사기’를 보면 682년, 신문왕 때 국학이라는 것을 세웁니다. 그것을 세워놓고 하나는 철학과를 만듭니다. 관리를 길러야 되니까 논어, 맹자를 가르쳐야지요. 그런데 학과가 또 하나 있습니다. 김부식 선생님은 어떻게 써놓았냐면 ‘산학박사와 조교를 두었다.’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명산과입니다. 밝을 明자, 계산할 算자, 科. 계산을 밝히는 과, 요새 말로 하면 수학과입니다. 수학과를 세웠습니다. ‘15세에서 30세 사이의 청년 공무원 가운데 수학에 재능이 있는 자를 뽑아서 9년 동안 수학교육을 실시하였다.’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여기를 졸업하게 되면 산관(算官)이 됩니다. 수학을 잘 하면 우리나라는 공무원이 됐습니다.

전 세계에서 가서 찾아보십시오. 수학만 잘 하면 공무원이 되는 나라 찾아보십시오. 이것을 산관이라고 합니다. 삼국시대부터 조선이 망할 때까지 산관은 계속 되었습니다. 이 산관이 수학의 발전에 엄청난 기여를 하게 됩니다. 산관들은 무엇을 했느냐, 세금 매길 때, 성 쌓을 때, 농지 다시 개량할 때 전부 산관들이 가서 했습니다. 세금을 매긴 것이 산관들입니다.

그런데 그때의 수학 상황을 알려면 무슨 교과서로 가르쳤느냐가 제일 중요하겠지요? 정말 제가 존경하는 김부식 선생님은 여기다가 그 당시 책 이름을 쫙 써놨어요. 삼개(三開), 철경(綴經), 구장산술(九章算術), 육장산술(六章算術)을 가르쳤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 가운데 오늘날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구장산술이라는 수학책이 유일합니다. 구장산술은 언제인가는 모르지만 중국에서 나왔습니다. 최소한도 진나라 때 나왔을 것이라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주나라 문왕이 썼다고 하는데 중국에서는 좋은 책이면 무조건 다 주나라 문왕이 썼다고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 책의 제 8장의 이름이 방정입니다. 방정이 영어로는 equation입니다. 방정이라는 말을 보고 제 온 몸에 소름이 쫙 돋았습니다. 저는 사실은 중학교 때 고등학교 때부터 방정식을 푸는데, 방정이라는 말이 뭘까가 가장 궁금했습니다. 어떤 선생님도 그것을 소개해 주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 책에 보니까 우리 선조들이 삼국시대에 이미 방정이라는 말을 쓴 것을 저는 외국수학인 줄 알고 배운 것입니다.


○ 9 장을 보면 9장의 이름은 구고(勾股)입니다. 갈고리 勾자, 허벅다리 股자입니다. 맨 마지막 chapter입니다. 방정식에서 2차 방정식이 나옵니다. 그리고 미지수는 다섯 개까지 나옵니다. 그러니까 5원 방정식이 나와 있습니다. 중국 학생들은 피타고라스의 정리라는 말을 모릅니다. 여기에 구고(勾股)정리라고 그래도 나옵니다. 자기네 선조들이 구고(勾股)정리라고 했으니까.

여러분 이러한 삼각함수 문제가 여기에 24문제가 나옵니다. 24문제는 제가 고등학교 때 상당히 힘들게 풀었던 문제들이 여기에 그대로 나옵니다. 이러한 것을 우리가 삼국시대에 이미 교육을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러한 것들이 전부 서양수학인 줄 알고 배우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밀률(密率)이라는 말도 나옵니다. 비밀할 때 密, 비율 할 때 率. 밀률의 값은 3으로 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고려시대의 수학교과서를 보면 밀률의 값은 3.14로 한다.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아까 이순지의 칠정산외편, 달력을 계산해 낸 그 책에 보면 ‘밀률의 값은 3.14159로 한다.’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 다 그거 삼국시대에 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해서 우리는 오늘날 플러스, 마이너스, 정사각형 넓이, 원의 넓이, 방정식, 삼각함수 등을 외국수학으로 이렇게 가르치고 있느냐는 겁니다.


저는 이런 소망을 강력히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 초등학교나 중·고등 학교 책에 플러스, 마이너스를 가르치는 chapter가 나오면 우리 선조들은 늦어도 682년 삼국시대에는 플러스를 바를 正자 정이라 했고 마이너스를 부채, 부담하는 부(負)라고 불렀다. 그러나 편의상 正負라고 하는 한자 대신 세계수학의 공통부호인 +-를 써서 표기하자, 또 π를 가르치는 chapter가 나오면 682년 그 당시 적어도 삼국시대에는 우리는 π를 밀률이라고 불렀다, 밀률은 영원히 비밀스런 비율이라는 뜻이다, 오늘 컴퓨터를 π를 계산해 보면 소수점 아래 1조자리까지 계산해도 무한소수입니다. 그러니까 무한소수라고 하는 영원히 비밀스런 비율이라는 이 말은 철저하게 맞는 말이다, 그러나 밀률이라는 한자 대신 π라고 하는 세계수학의 공통 부호를 써서 풀기로 하자 하면 수학시간에도 민족의 숨결을 느낄 수 있습니다.

저는 없는 것을 가지고 대한민국이 세계 제일이다라고 말씀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선조들이 명백하게 다큐멘트, 문건으로 남겨주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선조들이 그것을 배웠음에도 불구하고 이것이 ‘서양 것’이라고 가르치는 것은 거짓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러한 것이 전부 정리되면 세계사에 한국의 역사가 많이 올라갈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잘났다는 것을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인류의 역사인 세계사를 풍성하게 한다는, 세계사에 대한 기여입니다.


◈ 맺는 말


○ 결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제가 지금까지 말씀드린 모든 자료는 한문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선조들이 남겨준 그러한 책이 ‘조선왕조실록’ 6,400만자짜리 1권으로 치고 2억 5,000만자짜리 ‘승정원일기’ 한 권으로 칠 때 선조들이 남겨준 문질이 우리나라에 문건이 몇 권 있냐면 33만권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주위에 한문 전공한 사람 보셨습니까?

정말 엔지니어가 중요하고 나로호가 올라가야 됩니다. 그러나 우리 국학을 연구하려면 평생 한문만 공부하는 일단의 학자들이 필요합니다. 이들이 이러한 자료를 번역해 내면 국사학자들은 국사를 연구할 것이고, 복제사를 연구한 사람들은 한국복제사를 연구할 것이고, 경제를 연구한 사람들은 한국경제사를 연구할 것이고, 수학교수들은 한국수학사를 연구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시스템이 우리나라에는 전혀 되어 있지 않습니다. 한문을 공부하면 굶어죽기 딱 좋기 때문에 아무도 한문을 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결국 우리의 문건을 해결하기 위해서 언젠가는 동경대학으로 가고 북경대학으로 가는 상황이 나타날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이 한문을 해야 되냐 하면 공대 나온 사람이 한문을 해야 합니다. 그래야 한국물리학사, 건축학사가 나옵니다. 수학과 나온 사람이 한문을 해야 됩니다. 그래야 허벅다리, 갈고리를 아! 딱 보니까 이거는 삼각함수구나 이렇게 압니다. 밤낮 논어·맹자만 한 사람들이 한문을 해서는 ‘한국의 과학과 문명’이라는 책이 나올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 사회에 나가시면 ‘이 시대에도 평생 한문만 하는 학자를 우리나라가 양성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여론을 만들어주십시오. 이 마지막 말씀을 드리기 위해서 이런 데서 강연 요청이 오면 저는 신나게 와서 떠들어 댑니다.


감사합니다.

Posted by hugman
여기에 사람의 이름을 기억하는 첫 번째 비결이 있습니다. 명함을 받으면 그것을 주의 깊게 살펴 보아야 합니다. 특히 명함을 받을 때에 상대방의 이름을 정확히 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과장님”처럼 화답하며 이름을 불러주어야 합니다. 이러한 집중은 사람의 이름을 즉시 암기할 수 있도록 도와 줍니다. 저는 직업의 특성상 하루에 몇 명 이상의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데 명함을 주고 받을 때에 주의 깊게 이름을 듣고 저의 이름을 부르면서 인사하는 사람은 자주 만나보질 못했습니다. 우리가 사람을 만났지만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은 주의를 집중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 비결은 이미지를 파악하는 것입니다. 대화를 나눌 때에 다른 곳을 보지 않고 상대방을 바라보는 것은 기본적인 예의입니다. 아울러서 머리 속에 상대방의 외적 이미지의 특징을 잘 저장하려고 노력해 보십시오. 사람의 얼굴은 참으로 오묘해서 각각의 독특한 특징이 있습니다. 사진을 찍는 듯한 기분으로 그 이미지를 머리 속에 저장하고 그 얼굴을 한번 상상하여 보십시오. 그 효과는 대단하여 당신은 다음에 우연히 그를 만나더라도 알아보고 먼저 인사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두뇌는 텍스트를 기억하기보다는 영상 이미지를 더욱 잘 기억하는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세 번째 비결은 이름을 불러보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름을 기억하는 효과 이외에도 관계를 좋게 하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심리학자들은 어떤 상황에서 사람의 뇌파가 활성화되는가에 대하여 실험을 수행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친밀한 대화를 나눌 때의 뇌파는 다른 어떤 경우보다도 활성화된 상태를 보였습니다. 유독 그와 비슷한 정도를 보이는 경우가 있었는데 그것은 자신의 이름을 듣는 순간이었습니다. 저는 강의할 때 최대한 수강생의 이름을 불러 주려고 노력합니다. 20명 정도의 수강생이 참석한 가운데 4시간 정도의 교육을 진행한다면 모든 강생은 적어도 한번은 자신의 이름이 반가운 목소리로 불려지는 것을 경험합니다. “매니저님도 같은 의견이시죠?” 뭐 이런 식으로요. 저는 당연히 수강생과 친밀감을 형성하게 되고 적어도 몇 명 이상의 수강생은 후에도 그 이름을 기억할 수 있게 됩니다.

 당신은 새로운 사람을 만나서 명함을 교환하고 약 30여분 동안 이런 저런 비즈니스를 놓고 대화를 나누는 경험을 많이 가졌을 것입니다. 그 30여분 동안 상대방의 이름을 몇 번이나 불러 보았는지요. 제가 답을 알고 있습니다. 한번도 불러보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거의 정확합니다. 명함을 주고 받을 때에도, 대화 중에도, 미팅을 마치고 헤어질 때에도 이름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자기 중심적이고, 업무 중심적인 태도 때문입니다. 사람을 중요하게 여기고 그것을 나타내어 보십시오. 그러면 자신도 모르게 상대방의 이름을 대화 중에 사용하게 됩니다. 그렇다고 말끝마다 이름을 부르지는 마시기 바랍니다. 대화는 서로 주고 받는 것이기에 중간 중간에 “매니저님께서 정말 좋은 의견을 말씀해 주셨습니다”라는 식으로 이름을 부르며 화답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한 번 들은 이름이지만 절대 잊지 않는 강력한 비결을 소개합니다. 그것은 이름을 잘 기억나게 도와주는 연상의 고리를 만들어 보는 것입니다. 상대방의 직업과 연상하거나, 어떤 이미지, 유사이름, 의미와 연결시킬 수 있습니다. 김희정이라는 이름의 치과의사를 만났다면 희고 정갈한 치아를 드리는 사람으로 연상해 볼 수 있습니다. 한광희는 한 광주리 가득한 희망이라는 이미지를, 이원필은 이 시대가 원하고 필요로 하는 사람이라는 의미를 담아 보는 것이 가능할 것입니다. 저의 이름 김승중은 승리의 중심이라고 기억해 볼 수 있겠죠.

 소개해 드린 4가지의 비결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첫 번째입니다. 사람을 중요하게 여기는 마음을 가지고 누군가를 만났을 때 주의 집중하여 이름을 듣는 것입니다. 오늘 만나는 사람에게 적용해 보시기 바랍니다.

 
- 출처 : 김승중 카네기연구소 서울시티 소장 nicetool@carnegie.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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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가 변하는 만큼 교육시스템과 교육에 임하는 우리의 자세는 변하지 않고 있다.
여전히 19세기의 문맹률이 대단히 높던 시기의 '관료제'를 지탱하기 위해서 필요햇던 덕목들에 대해서 교육시키고 있다. 즉 여전히 언어,수학이 교육의 최상단에 있고 그외의 나머지 과목들에 대해서는 가치를 두지 않는다.

이에 비해서 인구는 엄청나게 늘어나게 되고 교육 여건이 좋아짐에 따라 '학위 인플레이션'일 일어나고 있다.
즉 우리는 현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필수교육을 너무 지나치게 공부하고 있다.

사람이 타고난 창의력을 어떻게 살릴 것인가? 시스템유지를 위한 교육이 아닌 새로운 문화오 사회를 만들어내는 창의적인 교육이 다음 세대의 인류를 위해서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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